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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02> 헤지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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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한국에도 곧 헤지펀드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관련 규제·감독을 완화한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융 투자의 스펙트럼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많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게 헤지펀드는 ‘투기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헤지펀드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헤지펀드의 역사와 정의·특징에 대해 살펴본다.

손해용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존 폴슨. 지난해 49억 달러를 벌어들여 전 세계 헤지펀드 매니저 중 ‘연봉왕’에 오른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낳은 스타다. 그는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의 가치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쪽에 거액을 투자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그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거액을 손에 쥐었다. 그는 지금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평가받는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그는 1992년 영국 파운드가 평가절하될 것을 예상하고 영국 파운드를 팔고, 미국 달러를 구입하는 투자 전략을 구사했다. 영국은 당시 유럽환율조정체제(ERM)에 가입돼 있어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조지 소로스의 투기적 공세를 막아낼 만큼 외환 보유액을 갖지 못했던 영국은 결국 ERM을 탈퇴했고, 파운드는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가 벌어들인 돈은 하루에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존 폴슨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금융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로선 어렵지만, 내년부터는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그간 시장안정을 명분으로 헤지펀드의 차입규모ㆍ운용주체ㆍ투자대상 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헤지펀드의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부는 금융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투자자들이 더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헤지펀드 운용과 관련한 여러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주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관련 조직을 미리 정비하는 등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과 열기도 높아지고 있다.

헤지펀드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49년이다. 포춘(Fortune)지의 기자로 활동했던 앨프리드 윈슬로 존스가 자신의 돈 4만 달러를 포함해 총 10만 달러를 모아 만든 것이 시초다. 당시 그가 구사한 투자기법은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공매도(short selling) 전략. 공매도는 ‘없는 걸 판다’란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포트폴리오 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헤징’(hedgingㆍ위험 회피)을 한 것이다. 이후 66년 포춘지가 존스의 펀드를 일컬어 ‘헤지펀드’라 명시했고, 그 뒤 이와 유사한 유형의 운용방식을 추구하는 펀드를 헤지펀드로 통칭하게 됐다.

60년대 중반 존스의 펀드가 S&P 500지수보다 월등히 우수한 실적을 보인 것이 알려지면서 헤지펀드에 돈이 몰리기 시작했고, 68년에는 미국 내 헤지펀드 수가 200여 개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반짝’ 인기에 불과했다. 60년대 후반부터 미국 증시가 고꾸라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는 헤지펀드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다. 70년대까지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1차 오일쇼크 등을 겪으면서 증시가 출렁이자 헤지펀드는 상당한 손실을 냈다. 잇따른 환매요청에 문 닫는 헤지펀드가 줄줄이 나왔다.



헤지펀드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다. 타이거펀드의 줄리언 로버트슨, 스타인하트 파트너스의 마이클 스타인하트,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등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가 등장하면서 고수익을 투자자에게 안겨주었다. 특히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는 첫 6년 동안 비용과 성과보수를 제외하고 연간 43%의 높은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동안 S&P 500이 약 19%가량 오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90년대 들어 미국 증시가 역사상 가장 길고, 강력했던 호황기에 들어서면서 헤지펀드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헤지펀드는 첨단 금융공학기법을 속속 도입하면서 계속 성장해, 현재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런던국제금융센터(IFSL)와 헤지펀드 리서치 회사인 HFR 등에 따르면 92년 약 1000억 달러였던 헤지펀드 자산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조3000억 달러로 20년이 채 안 돼 규모가 20배 이상 불었다. 헤지펀드 수도 지난해 기준 약 1만1000개로 같은 기간 10배 이상 늘었다.

수익률도 괜찮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1990~2010년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2.7%로 시장 평균 수익률(8.4%)을 4.3%포인트 앞선다. 이 기간 헤지펀드가 연간 마이너스 수익을 올린 건 두 해뿐이다.

그렇다면 헤지펀드의 명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어떤 경제학 교과서나 법률도 헤지펀드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 일반 펀드와 다른 특성이 있다는 식으로 느슨하게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헤지펀드의 성격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골드먼 삭스는 “다양한 범위의 위험과 수익률을 목표로 다양한 투자전략을 구사하고 대체로 시장 방향성과 관계없이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로 규정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점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다. 반면 머니센트럴인베스터는 “소수의 부유한 투자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높은 수익을 얻는 수단”이라고 소개했다. 헤지펀드의 투기적 성격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은 ‘헤지펀드’ 하면 후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세력, 핫머니(단기 투기성 자금), 하이리스크ㆍ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 등 부정적 이미지의 용어가 수식어로 붙는다.

하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다. 11조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문디’의 로랑 기예(Laurent Guillet) 대안투자자산운용 대표는 “헤지펀드는 가능한 한 변동성이나 위험을 낮게 가져가면서 시장의 부침과 상관없는 안정적인 절대수익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치고 빠지기 식의 초단기 투자를 일삼는 헤지펀드도 있지만 대다수 헤지펀드는 ‘금리+α’의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헤지펀드는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ㆍ원유ㆍ금 같은 실물자산, 주요국의 통화, 선물ㆍ옵션 등 파생상품 같은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시킨다.

투자전략도 일반 펀드와 차이가 난다. 일반펀드는 단순히 주식을 싸게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롱-숏(Long-Short)전략, 스프레드(Spread)전략, 차익거래전략, 변동성매매전략 등 금융기법을 활용해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펀드를 설계한다.

국내에 새로운 헤지펀드 제도가 안착하면 3년 내 40조∼50조원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ㆍ고액자산가의 투자일임상품이나 사모펀드ㆍ랩어카운트 등의 자금 중 10% 정도가 헤지펀드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유진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이 규모가 42조원에 달한다. 증권선물위원회 홍영만 상임위원은 “국민의 금융자산이 많이 늘어 다양한 투자수단이 필요해졌다”며 “헤지펀드 활성화로 신성장동력 부분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노벨경제상 수상자 참여한 펀드 1000억 달러 손실 내고 파산도

헤지펀드가 항상 승승장구해 온 것은 아니다. 투자자의 자금을 대부분 날리기도 하고, 세계 금융시장을 휘청거리게 한 사례도 적지 않다.

헤지펀드 역사상 첫손에 꼽히는 실패담은 1998년 발생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파산이다. 롱텀캐피털은 전설적인 채권 트레이더 존 메리웨더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스, 로버트 머튼 등이 1994년 함께 만든 회사다. 이들은 정교한 금융공학을 통해 투자 위험을 제거함으로써 저위험-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적어도 이들의 경력만 보면 절대 실패할 수 없을 듯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 롱텀캐피털은 설립 초기에 연 40%의 수익을 올리며 투자자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1998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자본금의 40배가 넘는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했다.

2006년에는 애머런스 어드바이저스가 천연가스 파생상품 거래에서 1주일 만에 60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하기도 했다. 애머런스는 2005년만 해도 자산 규모 95억 달러의 대형 헤지펀드 운용사였다. 특히 천연가스 선물 투자로 사세를 불렸다. 가격이 싼 여름물을 사서 보유하고 있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비싸게 파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2006년 9월 겨울이 따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폭락해 어마어마한 손실을 봤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와 줄리언 로버트슨도 아픈 기억이 있다.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는 1998년 엔화 가치가 떨어질 것에 베팅했다가 2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조지 소로스도 1990년대 말 첨단 정보기술(IT)주에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2000년대 닷컴버블의 붕괴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헤지펀드가 세계 금융시장을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지목받는 경우도 많다. 94년 멕시코 금융위기,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 사태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 등의 배후 세력으로 헤지펀드가 거론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에도 헤지펀드가 영향을 줬다. 헤지펀드에 유동성을 공급했던 리먼브러더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한 헤지펀드가 손실을 입고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파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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