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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표 떨어지는 소리 안 들리나” … 최시중의 방통위 열흘 만에 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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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동통신료 인하 후폭풍이 크다. 2일 방송통신위원회와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월 기본료 1000원 인하’를 비롯한 요금 부담 완화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됐음에도 소비자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며 울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적 독립을 지켜야 할 방통위가 여당에 휘둘려 시장 논리를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치권에선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한나라당 ‘미래 권력’인 신주류에 무릎 꿇은 상징적 사건”이란 해석도 나온다. 방통위가 애초 요금인하안을 발표키로 한 날은 5월 23일. 그러나 실제는 2일에야 나왔다. 그 열흘간 방통위와 한나라당, 통신업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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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여당과 방통위의 갈등이 표면화한 건 지난달 18일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까지 불러모은 뒤 신용섭 방통위 상임위원에게 호통을 치면서다. 이 의장은 “여당 요구가 반영 안 된 요금인하안을 밀어붙이면 되냐”고 질타했다. “눈을 어디로 보나, 먼 산 쳐다보냐”며 야단까지 쳤다. 23일 방통위가 요청한 당정협의도 거부했다. 최 위원장이 약속했던 ‘5월 중 인하안 발표’는 그렇게 무산됐다.

 여당 요구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콕 집어 ‘월 기본료 1000원 이상 인하’를 제시했다. 서미경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은 “경쟁 활성화 정책인 이동통신재판매(MVNO)니 망중립성이니 하는 건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데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방통위의 초기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주영 의장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독립기구인 방통위의 위상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 또한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 의장 행태에) 최 위원장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귀띔했다. 여당 요구에 즉각 응하기 힘든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통신료 결정권은 기업에 있다. 정부가 직접 인하 압박을 가할 경우 관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개의치 않았다. 서미경 위원은 “방법이야 방통위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방통위원들의 반발에 대해서도 “(방통위가) 욕을 들어도 싸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K의원은 방통위 주무국장을 국회로 불러 “표 떨어지는 소리 안 들리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5월 말 방통위는 결국 입장을 바꿨다. 국내 최대 이통사인 SK텔레콤에 기본료 인하를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SK텔레콤이 먼저 요금을 내리면 KT, LG유플러스도 그 뒤를 따르는 게 관행이다. 통신업계는 “매출 타격이 너무 크다. 데이터는 폭증하는데 4세대 네트워크 투자는 뭘로 하느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방통위 최고위층이 통신업체 최고경영자(CEO)에 직접 압박을 가했다. 1일 오후 SK텔레콤은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앙금은 남았다. 방통위가 “2일 요금 인하 브리핑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SK텔레콤 측은 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국민이 만족할 만한 월 1만원 이상의 요금 인하 효과를 보려면 경쟁 활성화 정책을 통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이 선례가 돼 때만 되면 정치권이 기업에 값을 올려라 내려라 하는 상황이 반복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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