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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휩쓰는 차이나 파워의 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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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부는 중국 바람은 뜨거웠다. 프랑스·영국·미국 등 선진국들의 무대였던 검은 대륙에 중국은 3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앞세워 거침없이 파고든다. 이젠 아프리카 어디를 가든 중국 사람과 중국 기업·상품을 만나게 된다. 중국 정부가 건설한 종합경기장·실내체육관 등 대형 시설에는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아프리카가 ‘위안화 경제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장면들이다. 바야흐로 대(大)중국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현지 상인들의 눈에 ‘동양인=중국인’
지난달 23일 오전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 중앙시장. 한국의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곳이다. 기자 일행이 자동차에서 내리자 두 손에 구두를 든 흑인 남성들이 “신, 신, 신”(중국을 뜻하는 프랑스어 Chine)을 외치며 몰려들었다. 중국산 구두를 파는 행상들이었다. 가격을 묻자 3만5000세파프랑(약 8만7000원)을 불렀다. 그뿐 아니었다. 시장 곳곳에는 중국산 옷·가방·식기 등 온갖 제품이 흘러넘쳤다. 건축자재를 파는 약 100㎡(약 30평) 규모의 철물점에 4명의 남녀 중국인이 앉아 있었다. 천(陳)이라는 30대 직원은 “이 시장에 중국 점포가 30곳쯤 된다”고 말했다.가게 앞 행상이 메고 다니는 간이 판매대에는 중국산 진통제 ‘펑유징(風油精)’이 눈에 띄었다. 중국인들이 그만큼 많이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업·취업 등의 목적으로 카메룬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5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이호성 주카메룬 대사는 말했다.

24일엔 전통 목각공예품 상가에 들렀다. 붉은 먼지가 날리는 상가 공터에 들어서자 10여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니하오” “라이, 라이”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했다. 중국어 ‘라이(來·들어오세요)’였다. 상가라 해 봤자 함석지붕에 두세 평짜리 허름한 점포 20여 개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카메룬 상인의 눈엔 ‘동양인=중국인’이었다. 야운데에 있는 중국 식당 10여 곳은 중·상류층의 외식 장소로 각광받으며 번창하고 있다.

중앙시장에서 자동차로 7∼8분쯤 떨어진 수퍼마켓 체인점 마히마(MAHIMA) 매장. 식탁용 냅킨부터 장난감·가스레인지·전기밥솥·컬러TV까지 중국산이 코너마다 쌓여 있었다. 다리미판의 경우 훙란(HONGLAN)·순이(SHUNYI) 같은 중국 브랜드 일색이었다. 수퍼마켓 매니저인 30대 후반의 키르티는 “중국인 고객이 하루 20명쯤 오는데 중국산 라면과 목이버섯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상품 진열대엔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룽샤몐(龍蝦麵) 등 라면 제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프리카의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겨냥한 중국의 구애는 거세다.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이 매년 조를 짠 것처럼 번갈아 가며 아프리카 각국을 찾는다. 그러면서 차관 제공이나 무상원조를 약속하고, 빚을 못 갚은 빈곤국엔 부채를 탕감해 준다. 중국의 올해 아프리카 경협·투자 규모는 72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06년(176억 달러)보다 세 배나 급증했다. 중국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중국 대륙에서 공부하는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은 연 6000명쯤 된다. 1980∼90년대 중국 유학을 마친 이들은 각국 정부에 포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깔린 친중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빌려준 돈은 석유·자원으로 상환받아
중국 정부는 카메룬에도 최근 2년간 약 500억원 규모의 무상원조·차관 등을 제공했다. 또 종합운동장(4만 석)·실내체육관(5000석)과 항만·철도·도로·병원·수력 댐 등을 건설해 줬다. 그 대가로 자원·에너지를 탐사·개발하고 가져간다. 중국은 요즘 북쪽 삼림 지역에 매장된 철광석(추정 매장량 20억t)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길이 1000㎞의 남북 철도 건설을 제안한 이유다. 하지만 철광석 생산량의 80%를 가져가는 조건이어서 카메룬 정부가 고심 중이라고 한다.중국은 대형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현지인 노동자를 쓰지 않고 2년 무비자 조건으로 필요한 인력을 중국에서 데려온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는 총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아예 현지에 정착하는 중국인도 급증하는 추세다. 정부 경협 자금을 앞세워 건설현장이 펼쳐지고 기업·상인·노동자들이 뒤따라 상륙하는 것이다.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를 육성하는 한편, 아프리카 각국에 10여 개의 특별경제구역(SEZ)을 세워 노동집약적인 소비재산업을 옮기고 있다. 90년대 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제창한 ‘밖으로 나가라[走進去]’는 해외 진출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집트부터 알제리·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잠비아 등을 망라한다. 카메룬의 경제 중심 항구도시 두알라엔 5억 달러를 투자해 버스 조립공장을 세운다. 자신들의 경제특구 개발 경험을 활용한 투자 전략이다.

2002년 내전이 끝난 산유국 앙골라는 친중 노선을 달리는 대표적인 나라다. 도스산투스 대통령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는데 2008년 45억 달러의 경협 차관을 얻었다. 그 돈으로 황폐화된 도로·항만·주택 등을 건설한 뒤 석유로 빚을 갚아 나간다. 물론 건설공사는 중국 기업들이 독차지한다. 그 결과 인구 1750만 명의 앙골라에 20만 명의 중국인이 들어와 일한다.
오한구 주앙골라 대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곳에 진출한 중국 대기업만 50여 개에 이른다”며 “앙골라는 중국 입장에서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이자 6대 석유 수입국”이라고 설명했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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