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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류대학 되려면 돈·국경·학과 장벽 넘어서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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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14면

한국 대학은 요즘 위기다.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휴학·학업 포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들은 등록금이나 경쟁력 확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이하 유펜) 에이미 거트먼(Amy Gutmann·사진) 총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유펜은 미 국내에서 톱5권, 세계에서도 톱10권 대학이다. 연 소득 4만 달러 이하 가정의 학생들은 학비·기숙사비를 일절 내지 않는다. 지난해 입학생의 경우 10%는 그 집안에서 배출한 최초의 대학생이다.

대학 랭킹 세계 톱10, 펜실베이니아대 에이미 거트먼 총장

거트먼 총장은 두 건의 대형 기부 약정을 체결하기 위해 방한했다. 동문인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이 유펜의 한국학 프로그램에 6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다른 한 동문은 ‘학교 발전에 써달라’며 익명으로 150만 달러(16억4580만원)를 냈다. 거트먼 총장에게 한국 대학 교육에 대한 ‘훈수’를 부탁했다. 다음은 23일 반포 메리어트호텔에서 거트먼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 (괄호 안은 편집자 주)
 
-최근 한국에서는 대학 등록금 문제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돈이 없어도 학생들이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교육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유펜에서는 학생들의 학교 접근권을 확대하는 ‘펜 콤팩트(Penn Compact)’라는 교육헌장을 채택했다. 재능과 열정이 있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학비를 보조해 인재로 키워야 한다는 취지다. 유펜은 재정 지원 신청이 입학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니드블라인드(need-blind)’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교생의 3분의 2 정도가 학교의 재정적 보조를 받는다.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금이 많아야 한다. 매년 수억원의 기금이 유펜으로 기부된다. 유펜에서 받은 교육에 감사하는 동문들의 기부금이 다수를 차지한다. 기금을 잘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 법인 내에 투자사무소(Office for Investment)를 두고, 와튼스쿨 출신의 펀드매니저들이 이사회와 협의해 기금을 폭넓게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 대학들은 ‘세계 100대 대학’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앞서 언급한 학교 접근권의 확대 이외에 글로벌·로컬 파트너십, 지식의 융합 두 가지를 더 들 수 있다. 글로벌 파트너십은 무한 경쟁 시대에 아주 중요하다. 싱가포르국립대, 서울대 등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공동 연구와 학생 교류 등을 진행하고 있다.글로벌 파트너십만큼 로컬 파트너십도 중요하다. 유펜이 위치한 필라델피아가 훌륭한 교육 도시로 발전하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펜은 필라델피아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우리 대학은 연 3만1000명을 직접 고용해 주 전체에서 고용 인원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간접적인 고용 창출까지 합치면 14만5500명이 유펜과 연관된 직업을 갖고 있다.

지식의 융합 역시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한 명제다. 학문 간 벽을 허물어 지식 연구의 깊이와 폭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건강행동연구센터에서 진행하는 공중 보건과 비만 연구다. 의학·간호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과 등 다양한 학과가 융합해 ▶어린이 비만과 인공 환경 ▶흑인 가족력과 유전자 테스트 ▶녹내장 치료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론 같은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생명윤리학 분야는 거의 모든 학과가 관여해 생명공학의 범위와 한계, 윤리적 문제 등을 논의한다.”

-온라인 교육 확대를 어떻게 보나.
“온라인 강좌와 e-러닝 도구가 많이 발달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강의실 교육의 보완재에 불과하다. 대면 교육의 효과나 질을 감안하면 온라인 교육은 결코 수업 강의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미국 유명 대학들이 온라인 강좌로 한국 시장을 파고든다기보다 한국 대학들과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상생을 추구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유펜의 경우 서울대와 학술 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치의학, 동아시아 문제, 교환학생제도 운영 등을 중심으로 협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지난달 KAIST에서는 학생이 여러 명 자살해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학업에 따른 압박으로 소중한 학생들이 목숨을 끊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사실 학업 스트레스는 비단 KAIST, 한국 대학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학업 스트레스는 많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유펜에서는 ‘모든 성공한 사람은 실패 경험이 있다’는 점을 꾸준히 가르치고 있다. 실패 없이 성공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패를 다루고 받아들이는 스킬이 더 중요하다. 많은 선배들의 사례를 예로 들며 상담하기도 한다.일부 학생은 학업 실패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낙인’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다. 그래서 매 학기 총학생회와 함께 ‘상담을 두려워 말자’는 홍보 활동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유펜의 한국 학생들은 어떤가.
“유펜에서 한국은 중국, 인도에 이어 외국인 학생 수로 3위(학부 및 대학원생 543명)다. 중국과 인도에 비해 작은 인구를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어린 나이에 머나먼 미국까지 와서 유학을 해서 그런지, 한국 학생들은 근성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기억에 남는 학생은 와튼스쿨의 제롬 피셔 기술경영 프로그램에 입학했던 학생이었다.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간 사이 아버지가 실직하셨더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해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가며 졸업했다. 올해 5월에 우등 졸업했다. 한국 학생들은 또한 창의적이고 모험심이 강하다.”

-유펜은 와튼스쿨의 MBA로 유명하다. 앞으로 MBA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와튼스쿨은 1881년 세계 최초로 MBA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매년 파이낸셜 타임스 세계 MBA 순위에서 1~2위를 다툰다.)
“MBA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학위이지만 변화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와튼스쿨에서는 학생의 선택권을 강화해 경영학 연구에 있어 다양성을 증진할 생각이다. 최근 들어 강조되는 비즈니스 윤리에 대한 교육도 대폭 강화했다. 또한 졸업생들에 대해 7년마다 온라인으로 최신 경영학 이론과 트렌드, 사례를 재교육하는 ‘리프레시(refresh)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에이미 거트먼 총장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로 프린스턴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7월 펜실베이니아대 제8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2011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를 흔드는 여성 150인’에 뽑혔다. 오바마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이슈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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