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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6·15 앞두고 남남분열 노려 … 중국의 중재외교에도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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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은 왜 남북 비밀접촉을 공개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일단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달 9일 베를린 제안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북핵 포기를 전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는 카드를 던지자 진의를 타진하려 막후 접촉에 응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자 판 깨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남측 당국자들과의 대면에서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 없이는 대남 접근이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이 중국의 남북 간 중재 외교 내용에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 중국은 지난달 22일 도쿄 한·중 정상회담과 25일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대화 문제 등을 조율했지만 성과를 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 비공개 논의의 시기와 장소는 물론 남측 참석자까지 낱낱이 공개한 건 판을 접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부터 강도 높게 펼쳐온 대남 대화공세가 지지부진하자 다시 강공으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조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북 지원 등에 대한 기대를 갖고 끌려다니기보다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뒤흔들어 놓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 11주년을 앞둔 시기도 고려해 대남 강경 압박으로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남갈등을 노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정상회담 추진 방법을 놓고 정치권 등에서 티격태격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폭로에 대한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강조해온 MB 정부가 비밀접촉으로 ‘투명성’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과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충성 경쟁 여파란 해석도 있다. 군 당국과 북한 민주화단체의 김정일 비판 전단 살포에 이어 최근에는 일부 예비군 사격장에서 김정일·김정은을 표적지로 삼는 일까지 벌어지자 군부 강경세력이 당 통일전선부의 대화라인을 눌렀다는 설명이다.

 북한 권부 내부의 이상 기류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북한에 뭔가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는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반응=중국 정부는 북한의 남북 비밀접촉 공개에 대해 1일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사태 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주요 언론은 1일 오후부터 ‘한국의 반북(反北) 정책하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거행할 수 없다’고 밝힌 북한 국방위의 성명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5월 20~26일) 직후 남북 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모양새가 연출된 데 대해 중국이 당혹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일본 정부도 공식적 반응을 삼갔다. 다만 한 외무성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에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기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영종 기자, 도쿄·베이징=김현기·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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