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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완전범죄? 심장은 스스로를 고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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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 남자가 아내를 살해하고 사체가 발견되지 않도록 처리해 완전범죄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뜻밖의 계기로 사체가 발견돼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건 누구의 이야기일까? 최근 바다에 던진 아내의 시신이 조수(潮水)에 밀려 되돌아온 바람에 범죄가 들통난 대학 교수 강모씨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강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알려진 19세기 미국 단편소설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공포환상문학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1849)의 ‘검은 고양이’ 말이다.

그림 ① ‘검은 고양이’의 삽화(1894∼95), 오브리 비어즐리(1872∼98) 작.

 ‘검은 고양이’는 교수형을 하루 앞둔 주인공 ‘나’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그는 자신이 본래 온순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음주벽이라는 악마”에 의해 점차 포악한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마침내 아내와 여러 애완동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아끼는 동물이었던 검은 고양이가 그를 가볍게 물자 불같이 화를 내며 고양이의 한 눈을 도려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만취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는 술에서 깬 뒤 잠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기껏해야 희미하고 애매한 느낌” 수준이고 다시 폭음(暴飮)에 빠져든다. 예전에는 자신을 그토록 따랐던 고양이가 질겁을 하며 피하는 것에 처음에는 서글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비틀린 심리를 느끼게 되고 마침내 고양이를 목매달아 죽인다.

 이 모든 것의 도화선은 폭음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술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고양이를 살해할 때는 “냉정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작가 포는 우리나라 법원이 좋아하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별로 지지하지 않을 것 같다. 포에게 있어 술은 죄의식을 무디게 하고 “인간의 마음속에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비틀린 심리”를 끌어내는 도구다. 주인공은 그걸 알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며 악의 구렁텅이를 향해 스스로 내달린다.

그림 ② ‘검은 고양이’의 삽화(1923), 해리 클라크(1889∼1931) 작.

 고양이를 살해한 후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심리로 비슷한 고양이를 하나 찾아 기르려고 한다. 아마 마음 깊은 곳에 비틀린 감정뿐만 아니라 죄의식도 있었기에 그것을 좀 덜어보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죽은 고양이와 똑같은, 한쪽 눈이 먼 검은 고양이를 우연히 술집에서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다. 새 고양이는 그를 지나치게 잘 따르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편해지지 않고 왠지 그 고양이가 자꾸 두려워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양이의 하얀 가슴 털이 점차 교수대 형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느 날 새 고양이 때문에 층계에서 넘어질 뻔하자 분노가 두려움을 압도해 고양이에게 도끼를 휘두른다. 그러나 정작 도끼에 맞은 것은 그것을 말리던 그의 아내였다. 그는 죄책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체 처리에 골몰한다. 생각 끝에 아내의 시신을 지하실 벽 속에 감쪽같이 숨긴다. 아내의 실종을 전해들은 경찰이 집을 수색할 때도 그는 자신만만하고 태연하다. 그런데 경찰이 아무 증거도 찾지 못하고 떠나려 할 때 그는 알 수 없는 심적 충동에 “이 벽 참 단단하죠” 하면서 시신이 숨겨진 벽을 친다. 그 순간 “지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소리 같은” 고양이 울음이 들리고 깜짝 놀란 경관들이 벽을 허문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 것이 바로 오브리 비어즐리의 삽화(그림 ①)이다. “보는 사람들의 눈앞에 이미 상당 부분 부패하고 핏덩어리가 엉겨 붙은 시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머리 위에 쩍 벌린 붉은 입과 불 같은 외눈의 흉측한 짐승이 앉아있었다.” 주인공 ‘나’는 고양이가 벽 안쪽에 시신과 함께 있는 상태에서 벽을 발랐던 것이다.

그림 ③ ‘고자질쟁이 심장’의 삽화(1923), 해리 클라크(1889∼1931) 작.

 비어즐리의 그림은 부패한 시신의 끔찍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또 흑백의 색채만 사용했기에 피와 고양이의 입과 눈을 붉은색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드러난 검은 고양이가 그 외눈을 허옇게 치켜뜨고 증오로 불태우는 모습은 충분히 소름 끼치며 귀기(鬼氣)를 발산한다. 탐미주의적이고 퇴폐적인 세기말 미술을 대표하는 영국의 삽화가 비어즐리는 그 강렬하게 충돌하는 흑백의 색채와 신경질적인 날카로운 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어즐리의 영향을 받았으며 역시 그로테스크한 그림에 뛰어났던 아일랜드의 삽화가 해리 클라크도 이 장면을 그렸다(그림 ②). 그의 삽화는 시신의 모습과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나’는 대체 왜 아내가 묻힌 벽을 쳐서 파멸을 자초했을까? 그 자신은 “순전히 허세의 충동으로”라고 그랬다고 했지만 잠재된 양심이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술집에서 데려온 두 번째 검은 고양이는 그에게 희생된 첫 번째 검은 고양이의 귀신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신의 죄의식이 창조한 존재일 수도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도 맥베스가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보고는 죄의식이 없던 시대에는 살인을 해도 유령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검은 고양이’는 포의 또 다른 단편 ‘고자질쟁이 심장’과 함께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역시 1인칭 시점으로 된 소설인데 여기서 주인공 ‘나’는 함께 사는 노인이 단지 그 한쪽 눈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살해한 다음 마룻바닥 판자 밑에 숨긴다(그림 ③). 비명소리 때문에 경관들이 찾아오지만 역시 그들은 혐의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노인의 시신에서 심장 박동이 들리는 환청 때문에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이렇게 범죄자의 죄의식이 유령과 환각을 불러내는 이야기는 무시무시하지만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한다. 어찌 보면 시신을 찾지 못하는 사건과 죄의식 없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 현실 세상이 더 섬뜩한 것이다.

문소영 기자

거리서 최후 맞은 주정뱅이, 평소엔 이성적이었던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에서 폭음하는 주인공은 알코올장애가 있던 에드거 앨런 포(사진)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그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최후를 맞은 것도 폭음이 한몫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포가 언제나 취해 있고 음울한 모습이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는 다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기묘한 이중성은 포의 문학적 특성이기도 했다. 그는 불합리하고 기괴한 환상을 담은 단편을 쓰는 동시에 최초의 추리소설로 불리는 ‘모르그가의 살인’같이 냉철한 추리력이 돋보이는 단편을 쓰기도 했다. 그는 광기 넘치는 단편도 수학적인 정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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