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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성공·실패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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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좋은 장관이 되려면 위기관리에 능해야 한다. 대통령이 절대적 영향력을 휘두르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여론, 국회, 전문가, 조직 구성원, 지자체 등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장관을 둘러싼 환경이 과거보다 복잡해진 만큼 위기관리 역량이 중요해졌다.

 『장관 직무가이드』는 성공하는 장관의 특징으로 ▶전문성 ▶조직 내 소통 ▶적절한 업무 위임 ▶강직함과 청렴성 ▶핵심 문제에 대한 역량 집중 등을 꼽았다. 특히 전문성 부족은 부하 직원들을 통해 보완할 수 있지만 열정과 용기·추진력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장관 스스로 갖춰야 하는 고유한 자질이라고 했다. 또 정책 반대자를 이해하고 설득해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치력도 성공 장관의 조건으로 거론했다.

 국정 전반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했다. 장관은 특정 부처의 장이면서도 동시에 국무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직무가이드는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의 위치를 잊고 부처 이익을 대변하는 장관의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면 ‘칸막이의 포로’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실패하는 장관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

 #장관이 업무 관련 협회와 이익단체의 정례적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해 축사를 한다. 집무실에 잠깐 들어오면 직원들이 결재판을 들고 줄을 선다. 다음 행사 때문에 장관이 나가면 줄을 서서 기다렸던 직원들은 한숨을 쉬면서 돌아선다.

 #장관한테 야단맞을 이유가 있는 보고나 결재는 장관이 바쁠 때 얼른 해치운다. 장관은 시간이 없다는 수행비서의 독촉을 받으며 대충 훑어보고 사인한다. “이거 이렇게 하면 문제없지?” 이런 하나마나 한 질문도 던진다. 장관 얼굴 보고 보고할 수 있게 시간과 장소를 잡아주는 장관실 비서관의 권력이 세진다.

 #오후 6시30분이 지나도 장관이 집무실에 머물러 있다. 극단적인 경우엔 밤늦게까지 집무실을 떠나지 않고 일한다. 실장·국장에서 사무관까지, 심지어는 산하기관 임원들까지 덩달아 퇴근하지 못한 채 장관이 언제 퇴청하는지 눈치를 살핀다.

 #장관이 국회 답변자료를 완벽하게 써주기를 요구하고 현장에서 그대로 읽는다. 공무원들은 장관 국회 답변자료를 밤새워 쓴다. 국회가 열리면 돌발질문에 대비하느라 회의장 밖 복도에 진을 친다. 이러니 민원인을 만나지 못하고 정책기획을 할 시간도 없다.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해외연수나 교육연수 기회를 열심히 찾는다. 잘못돼 가는 정책에 자기 이름을 올리지 않기 위해서다.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지도, 잘못된 정책을 고치자는 건의도 안 한다. 장관이, 청와대가, 총리실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일만 한다.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거나 영어 공부를 하는 데 쓴다.

 유 전 장관의 쓴소리. “이렇게 되면 장관은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국민은 누가 어느 장관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모든 일을 챙겨야 하고 일이 잘못되면 대통령 혼자 온갖 비난을 듣게 된다. 무능한 장관은 대통령의 무덤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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