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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선과 마크 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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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정장선(53) 의원이 민주당 사무총장에 기용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많이 반가웠다. 소탈한 그의 성품이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 의원은 1995년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아마도 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래 주요 정당의 핵심 요직에 지방의회 출신 인사가 임명된 것은 정 의원이 처음일 것이다. 그는 2008년 세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앞두고 기자에게 “만날 싸움이나 하는 국회의원 대신 평택시장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의석 하나가 중요한 당 지도부의 만류로 주저앉았지만, 그에게 평택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도 의원 경험이 없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지방의회 경력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판검사 출신, 기업 CEO 출신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면 “출세했다”고들 한다. 지역 현안을 꼼꼼히 살펴보고 의회 민주주의 현장을 몸소 체험한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보다 큰 뜻을 펼치는 과정이 왜 한국에선 이례적인 현상이 돼버린 것일까.

 정 총장 임명 이후 워싱턴 싱크탱크 모임에서 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미국에서 연방 의원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답했다. “먼저 주 의회에 진출해 주변 공동체의 문제부터 파악해 나가라. 그게 가장 빠른 길이자 가장 넓은 길이다.”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마크 김(45)은 한국계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 한국을 떠난 그는 정치에 뜻을 품었다. 대학생 시절 당시 마이클 듀커키스 민주당 대선후보 진영에서 인턴으로 첫 경험을 쌓았다. 로스쿨을 마치고선 리처드 더빈 연방 상원의원의 보좌진에 합류했다. 선거와 의회를 두루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 정치 스승 더빈이 그에게 “때가 됐다”며 주 하원 출마를 권유했다. 그는 승리했다. 최근 재선 도전을 앞두고 만난 마크 김의 말은 기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지금 연방의원 자리에 관심이 없다. 주 하원에서 계속 헌신의 길을 걷겠다. 그러다 주민들이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더 큰일을 권유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 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그 반대라면 나는 주 하원에도 머물지 않을 거다.”

 최근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한국 사회가 본류(本流)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집중, 철저한 준비의 모습이 주는 울림은 깊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음악이, 문학이, 미술이 그 자체보다 외적인 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정장선과 마크 김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둘러싼 환경은 천양지차다. 미국의 마크 김은 정통이자 다수파, 한국의 정장선은 이단이자 소수파다. 우리 사회도 이제 폼나는 자리만 찾아다니는 사람 대신 뒤편에서 꾸준히 준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줘야 한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서 출발했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