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헤브라이즘도 헬레니즘도 그에게서 영감 얻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0호 29면

『길가메시 서사시』의 영문판(1999·앤드루 조지 역) 표지

최고(最古)가 최고(最高)로 남아 있기는 어렵다. 더 좋은 게 끊임없이 새로 나온다. 『길가메시 서사시』(이하 『길가메시』) 같은 것은 예외다. 5000여 년 전 이야기로, 거의 문자가 발명되자마자 기록된 이 서사시에는 정글북,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스·오르페우스·오디세우스, 유대·기독교 전통의 노아의 방주, 삼손, 최후의 만찬, 진시황의 불로초, 베오울프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 그렌델, 아서 왕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세계 문학사는 『길가메시』에 바치는 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22> 『길가메시 서사시』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원형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1916년 『길가메시』의 독일어판을 읽고 경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길가메시』를 접한 기쁨을 함께 나누려 했다. 『길가메시』를 대영박물관에서 1872년 처음 판독해낸 조지 스미스(1840~1876)도 기쁨에 넘쳐 ‘옷을 벗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뛸 듯이 기쁜 이유가 릴케와는 좀 달랐다. 스미스는 1853년 니네베 유적에서 발굴한 설형(楔形)문자가 새겨진 점토서판(粘土書板)을 읽다가 자신이 판독한 내용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원형(原型)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점토서판에는 노아에 해당하는 우트나피슈팀이 방주 덕분에 홍수에서 살아남고 니시르 산에 도달해 비둘기·까마귀를 날려보내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스미스는 1872년 12월 3일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 총리까지 참석한 학술발표에서 성경의 대홍수 이야기는 수메르 문명이 남긴 『길가메시』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폈다. 스미스가 아시리아학의 스타로 떠오른 사건이었다. 그는 14세까지만 교육을 받고 인쇄소에서 지폐 원판 제작공으로 일했다. 고대 중동사에 대한 열정이 그를 결국 대학자로 키운 것이다.

대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의 마지막 장에 수록된 내용이었다. 『길가메시』 판본 중에서 가장 완벽한 ‘표준판’은 12개 점토서판으로 구성됐으며 수메르어가 아니라 셈족의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됐다.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기원전 668~627 재위)은 인류 최초의 도서관을 설립했는데 그중 『길가메시』가 포함됐다. 기원전 612년 그의 왕국은 멸망했다. 도서관이 땅에 묻히는 바람에 오히려 『길가메시』 표준판이 보존돼 1853년 다시 햇볕을 볼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대학에 있는 길가메시상(像)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부른 수메르 사람들은 『길가메시』를 비롯한 문자 문명 외에 달력·도량형·맥주·바퀴·화폐·세계 지도를 후세에 남겼다. 수메르 문명의 유산이 속속 밝혀지면서 19세기 말 독일을 중심으로 ‘범바빌론주의(Panbabylonism)’가 대두됐다. 구약성경과 유대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었다. 아시리아학자 프리드리히 델리치(1850~1922)는 심지어 『길가메시』를 포함해 바빌로니아 문헌이 구약성경보다 시대적으로 앞서고 우월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길가메시』는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그리스 시인들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정된다. 모든 것이 수메르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지나치지만 『길가메시』가 고대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00~2700년께 수메르 남부에 위치한 도시국가 우루크를 다스리던 왕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도시국가였다. 길가메시는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수메르인들은 그를 신격화했다. 신화 속에서 길가메시는 결국 신성(神性) 3분의 2와 인성(人性) 3분의 1을 지닌 영웅이 됐다.

길가메시가 살았던 시대의 수메르 사람들은 어떤 신을 믿었을까. 『길가메시』에 나오는 신들은 그리스인·로마인이 믿는 신들과 유사했다. 훗날 가나안·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은 신의 이름인 엘(El)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엔릴(Enlil) 신이 대홍수로 인류를 쓸어내려고 했던 이유도 도덕적인 문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져 신들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시끄러워서였다.

영웅과 짐승남의 만남
『길가메시』에 나오는 신들은 전지전능하거나 온전히 선한 존재는 아니었다. 신들은 생각도 왔다 갔다 자주 바뀌었다. 그런 신들과 인간은 갈등·긴장 관계였다. 수메르인들이 길가메시에게 일부 신성을 부여한 이유는 그런 신들에게 대항하는 데 요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신들이기에 인간이 할 일 중에는 신들을 섬기는 일이 포함됐다. 인간은 신들의 수고를 덜어줘야 했다.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도 직접 노동하는 수고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간은 신들의 뜻에 정면 도전하기도 했고 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신들을 ‘개나 파리 같은 존재’로 인식하기도 했다. 수메르인들이 죽어서 가는 지하세계인 쿠르누기는 단일한 장소였다. ‘되돌아 올 수 없는 땅’인 쿠르누기는 살았을 때의 신분이나 행실과 무관하게 누구나 가는 곳이었다.

『길가메시』의 주요 테마는 우정과 명예, 영생의 추구다. 신들에게 완벽한 도덕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길가메시 왕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영웅이었다. 그의 통치는 폭정이었다. 도시를 둘러싼 성곽을 건설하기 위해 인력을 차출하고 결혼하는 신부들에게 초야권(初夜權)을 행사했다.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원성이 하늘에 닿자 신들은 길가메시와 맞설 수 있는 영웅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천신(天神) 아누는 모신(母神) 아루루에게 명해 야생 인간 엔키두를 만들었다. 엔키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투성이였다. 야성적인 엔키두가 도시 문명을 상징하는 우루크에 가기 위해서는 통과의례가 필요했다. 엔키두를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슈타르 여신의 여사제인 샴하트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빵과 포도주, 섹스를 가르쳤다. 둘은 6일 낮 7일 밤 동안 관계를 가진다. 길가메시와 만난 엔키두는 싸움에 져 무릎을 꿇고 둘은 서로 존경하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신들이 엔키두를 창조한 목표는 길가메시가 엔키두와 싸우느라 백성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신들의 목표는 우회적으로 달성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명예를 찾아 모험의 여정을 떠났기 때문이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러 가자고 제의한다. 엔키두가 주저하자 길가메시는 말한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어차피 신들만이 영생을 누리는 것 아닌가.” 훔바바를 죽이는 데 성공하자 다른 도전이 들이닥친다. 이번에는 여난(女難)이다. 사랑의 여신인 이슈타르가 길가메시를 유혹하며 배필이 돼줄 것을 요구했다. 온갖 부귀영화도 약속했다. 길가메시는 거부한다. 이슈타르의 노리개가 됐던 남자들은 모두 비참하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분노한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 신에게 하늘의 황소를 요청한다. 황소는 수백 명의 용사들을 희생시키지만 길가메시·엔키두 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분노한 신들은 하늘 황소와 훔바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길가메시와 엔키두 둘 중 하나는 져야 한다고 결정한다. 엔키두가 병으로 죽어 성대한 장례식이 거행된다.

허망한 영생의 꿈
『길가메시』의 마지막은 불멸의 추구와 실패에 대한 것이다. 엔키두의 죽음으로 상심한 길가메시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신들로부터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슈팀을 찾아간다. 우트나피슈팀은 “영원한 것은 없다”며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에 대적하면 인생의 즐거움이 줄어들 뿐이라는 것을 길가메시에게 납득시키려고 한다. 길가메시가 고집을 피우자 6일 낮, 7일 밤이 지나는 동안 깨어 있으면 영생을 얻게 해주겠다고 우트나피슈팀은 약속한다. 길가메시는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곯아떨어진다. 다른 기회가 주어져 길가메시는 불로초를 구하지만 뱀에게 빼앗기고 만다. 허탈한 길가메시에게 엔키두가 나타나 진흙을 먹으며 연명하는 명계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전해준다. 길가메시는 우루크로 돌아가 백성의 왕이자 목자가 된다.

『길가메시』에 나타난 행복의 지혜를 대표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슈팀을 찾아 가는 길에 만난 여신이 선술집 여주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일러준 말이다. 이 말을 미리 귀담아 들었다면 수고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인간은 신들이 정한 순서에 따라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그러니 마지막이 올 때까지 삶을 즐겨라
절망이 아니라 행복으로 살아라
매일 매일을 즐겁게 살아라
맛있게 음식을 먹고
목욕하고 기름을 발라라
알록달록 번쩍거리는 깨끗한 옷을 입고
음악과 춤으로 네 집이 가득 차게 하라
네 손을 쥐는 아이를 소중히 사랑하고
네 아내를 네 품에서 기쁘게 하라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의 운명이요
가장 잘 사는 법이니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