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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답사길 다시 나선 유홍준, 경복궁을 걷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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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상에 그냥 생긴 것은 없습니다. 돌탑 하나에도 숱한 시간이 깃들어 있습니다. 판타지의 세계도 결국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한 ‘이 달의 책’ 6월 주제는 ‘공간의 틈, 시간의 결’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매력적 만남을 탐(探)하는 책을 권해드립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유홍준 지음, 창비
452쪽, 1만6500원

그렇다. 알고 보면 모든 게 재미있다. 자세히 뜯어 보면 감동도 배가된다. 시간과 사람이 녹아있는 문화유산이라면 더 그렇다. 그게 장소일 수도, 유물일 수도 있다. 국보가, 보물이 아니어도 좋다. 애정과 관심이 있으면 기왓장 하나도 우주가 될 수 있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 무지개 모양 돌다리, 홍예(虹霓)로 유명하다. 문화유산의 전도사로 통하는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명지대 교수가 남도 답사의 필수처로 꼽는 곳이다. 유 교수는 이곳의 대변소(大便所)를 주목한다. 절집에서 해우소(解憂所)로 통하는, 화장실이다. 그런데 이곳,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이다.

 시인 정호승도 여기에 반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시 ‘선암사’ 일부)고 읊었다. 뚫려 있는 창살 사이로 사찰 경내를 볼 수 있는 이 곳, 내 몸의 배설물과 세상이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1990년대 답사 열풍을 일으켰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가 10년 만에 속개됐다. 저자 스스로 “다시 답사기로 돌아왔다”고 일성을 질렀다. 1권이 나온 지 18년 만이다.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저자의 면모는 여전하다. 유머가 넘치면서도 속속 들어오는 필체로 문화유산의 이모저모를 들춰낸다. 미국·중국 등 소위 ‘대국(大國)’에 주눅들지 않는 문화의식을 일깨운다. 이른바 우리 안의 ‘콤플렉스(열등의식)’ 해체다.

 시리즈 6권에는 현재 복원 작업이 한창인 경복궁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와 통치철학을 읽어볼 수 있다. 경북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합천, 충남 부여·논산·보령 일대도 순례한다. 답사 일정표와 안내지도도 부록으로 실어 간단한 가이드 북 역할도 한다.

 압권은 역시 저자의 꼼꼼한 공부와 이를 귀에 쏙쏙 들어오게 풀어내는 입담. 불상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애정을 갖게 만드는 솜씨가 ‘상수(上手)’ 자체다. 마침 책의 부제가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유명하든, 무명이든 우리의 지금을 받쳐온 ‘고수(高手)’들을 돌아보게 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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