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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99> 7등 가수에게 보내는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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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풍경1: 학창시절, 체력장 시험을 치를 때 기억나세요? 여학생들은 철봉에 매달립니다. 팔을 굽히고, 턱을 철봉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버팁니다. 10초, 20초,30초 시간이 흘러갑니다. 팔이 덜덜덜 떨립니다. 그래도 꿈쩍 안 합니다. 1초라도 더 버티려고 이를 악물죠. 조금 더 지나면 이빨이 덜덜덜 떨립니다.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그래도 버팁니다. 마음 속으로 ‘1초, 2초, 3초’ 세면서 한 순간이라도 더 벌려고 애를 씁니다.

 ‘현문우답’은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봅니다. 나의 에너지, 나의 정성, 나의 노력을 모두 쏟아부은 자리. 그래서 기진맥진해 쓰러질 것 같은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것. 그게 바로 최선을 다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순간은 늘 우리를 훌쩍 성장하게 합니다. 가능성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기 때문입니다.

 #풍경2: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는 모두 7명의 가수가 출연합니다. 부담도 큽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진검승부를 벌이기 때문이죠. 가수들은 “무대에서 3~4분 노래하기 위해서 2주일 동안 얼마나 피말리게 살아야 하는지 아느냐? 솔직히 말해 그만 두고 싶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살벌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어떤 가수는 “만약에 7위를 한다면 아쉽기도 하겠지만, 고맙기도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탈락하는 아쉬움, 짐을 벗은 후련함이 공존하리라 보니까요.

 최근에는 가수 임재범이 중도하차했습니다. 갑작스런 맹장수술로 노래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 전에 김건모가 ‘재도전’ 논란이 불거진 뒤 중도하차했습니다. 가수 백지영은 앨범 준비로 바쁘다며 빠졌습니다.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가수들은 달리는 기차에서 내립니다. 다시 말해 피 말리는 경쟁에서 빠지는 겁니다.

 ‘현문우답’은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단호한 선언에는 “나는 프로다” “실력으로 승부한다” “최선을 다한다” “나는 도전한다”는 의미가 녹아있지 않나요.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왜냐고요? 그속에서 우리의 삶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도하차’ ‘자진하차’의 풍경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저마다 1등을 자처하는 가수들이 ‘7등 가수’가 될까봐 겁이 납니다. 그러나 영원한 1등도 없고, 영원한 7등도 없습니다. 1차 경연에서 1등했던 박정현도 2차 경연에선 7등을 했습니다. 다음 경연에선 또 ‘확 달라진 박정현’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무대가 즐겁습니다. 늘 변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세상처럼 말입니다.

 1등과 7등, 가수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성장합니다. 중간평가에서 7등을 했던 가수는 어김없이 자신을 파괴하죠. 그리고 새로운 무대를 창조합니다. 최종 경연에선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련을 기회로 바꿉니다. 그걸 통해 가수들은 성장합니다. 자신의 한계, 자신의 스타일을 팍팍 깨면서 ‘새로운 나’를 보여줍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며 커가는 겁니다. 그만큼 힘이 들고, 그만큼 성장하는 겁니다.

 ‘7등 가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1등 가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7등을 하고 떠났던 가수 정엽과 김연우에게 말입니다. 멈추는 1등보다 도전하는 7등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해 외칩니다. “7등 가수, 너는 가수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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