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하위권 점수 공시 태도, IR 여부가 갈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2003년 7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한국의 재벌’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부실회계가 판치는 실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FT는 “회계법인 PWC의 회계기준 평가 결과 한국은 35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며 “한국 기업의 회계 부정 및 주주이익 무시 행태가 문제이며,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투명성을 불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당시에는 SK글로벌의 1조5900억원 규모 분식회계 등이 터져 국가 신인도까지 흔들렸다.

 이후 우리나라는 회계제도를 개선하고 회계감사를 강화하면서 투명성을 높였다. 하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선 모자라다는 평가다. 2010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회계 및 감사 부문 신뢰도 순위는 58개국 가운데 46위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0년 감사·공시 부문 순위도 139개국 가운데 95위에 머물렀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의 성적이라 보기에는 부끄러운 순위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정혜영 교수는 “국가 경쟁력에 턱없이 못 미치는 회계 신뢰도를 갖고 있다는 얘기”라며 “이런 부정적 인식은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높은 프리미엄을 적용받는 식으로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회계학회와 중앙일보사가 처음으로 회계 투명성 순위를 발표한 것은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이영한 교수는 “모범 기업의 사례를 통해 다른 기업들의 투명한 회계를 유도하고 한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올해 ‘투명회계 대상’ 수상업체들은 선진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내부 회계 관리를 강화하는 등 완벽하진 않지만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 곳이다. 대상을 차지한 KB금융그룹은 2007년 6월 은행권 최초로 국제회계기준(IFRS) 준비단을 구성해 새로운 회계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감사위원회와 이사회가 IFRS 도입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있다. 이번 평가에선 적극적으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하고, 지속가능 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양질의 회계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에스원은 신뢰성 있는 재무보고를 위해 내부통제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최고경영자 직속의 감사팀을 운용하고 있다. 또 별도의 내부 회계 처리 매뉴얼을 제정해 모든 자회사에 적용하고 있다. 승격 시험 때도 회계 및 세무 과목을 이수토록 했다.

 우수상을 받은 LG생명과학은 기업 규모가 5000억원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기 검토를 통해 자세한 기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좋은 점수를 얻은 이유다. 벌금이나 비정상 재량발생액, 공정거래위원회 의무공시 위반 등의 감점사항도 거의 없었다. LG생명과학은 “2004년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내부적인 혁신작업을 통해 시스템을 개선해 오고 있다”며 “지난해 이미 IFRS 도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코스닥 최우수상을 받은 나이스정보통신은 IFRS를 조기 도입해 엄격한 감사 시스템과 투명한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충실한 감사·사업보고서를 작성한 국일제지는 코스닥 우수상을 받았다.

 이번 평가에서 내로라하는 일부 한국기업이 100위 안에 들지 못한 점도 눈길을 끈다. 회계학회는 이들이 기업 회계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었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차입금에 대해 설명할 때 수상 기업들은 XX은행에서 ○%에 빌렸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기재했지만 이들은 차입금 총 △△△억원 식으로 구색 맞추기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이정조 대표는 “최소한의 정보 제공에만 그치다 보니 이용자들의 정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고 말했다.

 한국회계학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회계 불투명성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는 연간 50조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08년 기준으로 증시에서 38조원 정도를 저평가받고 있으며, 이자 비용을 15조원 추가 부담하고 있다. 회계 불투명성에 따른 증시 저평가 손실은 2014년 5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