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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1)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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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재승 교수(오른쪽)와 조한혜정 교수가 만났다. 조한혜정 교수는 “경쟁만 강조하기 때문에 20대는 더 불안해하고 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인문학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통합하는 열쇠로 인문학이 주목 받고 있다. 카이스트 정재승(39) 교수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를 찾아 나선다. 역사·사회·과학 등을 가로지르며 세상의 보다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일 예정이다. 그 첫 회로 연세대 조한혜정(63) 교수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조한 교수는 우리 시대의 청소년과 20대를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대안교육 운동을 주도해왔다. 언제부턴가 빛나고 가슴 벅찬 때가 아닌 바쁘고 외롭고 불안한 시기로 요약되는 한국 사회의 청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의 열풍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또 21세기 대한민국 학교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조한 교수는 "20대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승=그 동안 내신 책을 읽어보면,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에 청춘을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꾸준히 관찰하셨습니다. 청년세대는 어떻게 변화해왔나요.

 ▶조한혜정=1980년대에 저는 『탈식민지 지식인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쓰고 있었죠. 80년대 운동권이 좀 더 민주적이고 다원화되고, 내부적으로 소통이 됐다면, 지금 정치도 한결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90년대 대학생들은 한편으로는 일상의 민주화, 개인의 권리, 장애인·소수자 권리를 이야기 하고, 다른 편으로는 ‘온리 원(only one)’, 즉 독자적 주체인 ‘나’를 내세우는 쪽으로 갔습니다. 이른바 서태지 세대’죠. 자기를 표현하고 즐겁게 모여서 놀고, 그게 또 산업으로 가고…. 그게 소통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소통은 안하고, ‘나는 나’라는 게 너무 셌던 거 같아요.

 ▶정=제가 72년생, 그 ‘서태지 세대’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책을 대학시절에 읽었습니다. 제 또래는 흔히 ‘X세대’로 불리면서, 이전 활자세대보다 이미지로 사고한다며 깊이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죠. 요즘 청춘을 보니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조한=제가 쓴 『교실이 돌아왔다』(※대학생 103명과 함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강좌를 꾸려 나간 이야기를 엮은 책. 2009년)를 보면, 학생들이 똑똑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똑똑한 게 아니고 사실 불안한 거였어요. 어려운 시대를 살아냈고, 기획력도 있던 부모 세대가 IMF 등을 겪으면서 “어? 나라 믿고는 안 되겠다” 하며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거나 유학을 보내기 시작했죠. 부모의 배경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됐죠.

 ▶정=사회적 부작용도 있었죠.

 ▶조한=학교의 역할을 학부모와 학원이 나눠 가지면서 공공영역이 없어졌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학교는 좋든 싫든, 아이들끼리 골탕을 먹이거나 의기투합을 하든 하나의 공공영역이거든요. 그런데 조기유학이나 학원 등에 매달리면서 아이들이 할 일이 많아진 거에요. 학생들이 고도로 개별화되었죠. 대학에 들어온 후에도 부모가 짜준 대로 바쁘게 지내는 아이들이 있어요. 전부터 바쁘게 살던 삶이 이어지는 거죠. 학생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다’고. 그런 애들이 솔선해서 만든 게 스펙 게임이에요. 교환학생, 학점관리 등등.

 ▶정=선생님이 신자유주의세대라고 정의하신 학생들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교육이 학교에서 시장으로 넘어갔고, 개인의 자유보다 시장의 자유가 더 중요하게 됐죠.

 ▶조한=엄마가 모든 걸 챙겨줬던 애들이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이들의 자생능력을 빼앗는다는 겁니다. 요즘 아이들은 일도 잘하고, 정보처리 능력도 뛰어난 편이긴 해요. 문제는 그런 능력만 좋다는 겁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주어지면 잘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은 떨어져요. 지금 부모들은 지나치게 희생하고, 그러면서 자식에 대해 너무 큰 희망을 갖습니다. 물론 모든 청춘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정=그래도 경쟁은 부인할 수 없지 않나요.

 ▶조한=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특징이 뭐냐면, 친구를 깊게 못 사귀어요. 친구는 경쟁상대일 뿐이고요. 386세대 부모의 지나친 열정 때문에 아이들이 부유(浮游)하게 됩니다. 그게 제일 문제죠. 그래서 저는 수업시간에 다섯 명씩 토론을 시켜, 한 학기 동안 친구 만드는 수업을 해요. 학생들이 너무 좋아해요. 효과도 좋고요. 첫 수업에 그런 말을 합니다. “너희 스스로 배울 수 있다!” 우리 학과에서 강조하는 건 돌봄(care), 노동(work), 그리고 시민(citizen)입니다.

 ▶정=저도 학생들 면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이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꼭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조한= 80년대가 사회를 위한 인간, 즉 ‘Good one’식의 사고였다면 90년대는 ‘The only one’이었어요. ‘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거죠. 그리고, IMF 이후 시대는 ‘최고(The best one)’를 외치는 경쟁사회였는데, 이제 다시 ‘Good one’이 많이 생겨날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 희망을 봅니다. 요즘 아이들이 잘 하는 것 정말 많아요. 영어든 뭐든, 그것(재능)을 잘 쓰기만 하면 좋은 재원들이 되는 거죠.

 ▶정=지금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엔 부모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나요.

 ▶조한=그래서 일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스스로 좋아하고, 잘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는 게 ‘돌봄과 노동’입니다. “기도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기도가 인문학인 셈이죠.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인문학과 공업, 생태, 커뮤니티 비즈니스, 자활 노동,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어요.

 ▶정=그것이 선생님의 ‘돌봄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거죠.

 ▶조한=그렇죠. 이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존감도 생기고, 무엇보다 표류하지 않아요. ‘무조건 일류대를 가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지금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압력을 받고 자란 아이는 기본적으로 심성이 불안해요.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니까요. 어머니들이 언제까지 함께 트랙을 돌아 줄 겁니까. 영원히? 그게 가능해요? 그렇지 않잖아요.

 ▶정=선생님이 운영에 참여해온 ‘하자센터’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조한=대안학교 쪽에 있는 학생들은 몸이 아예 달라요. 스스로 방황도 하고 바닥을 쳐보기도 하고 이런 경험이 반복되죠. 올해 10주년입니다. 여기 아이들은 제 힘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죠.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커리큘럼도 많이 바뀌었고요.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죠.

 ▶정=하자센터에서 대안교육을 받은 아이들도 제도권 교육 받았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데요.

 ▶조한=하자센터도 중간에 나가는 아이도 있고, 쉬다 다시 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함께 농산물을 지어 먹으며 사는 그룹도 있고요. 한 편에선 사회적 기업도 합니다. 자발적인 공간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은 공간이라도 함께 만들어나가려는 아이들이 건강한 거죠. 저는 아이들에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지금부터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시작하라고요. 그리고 제발 사람과 만나라고요.

 ▶정=마지막으로 지금 청춘들에게 ‘이렇게 살면 더 빛난다’라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조한= 환갑을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삶이라는 건 하나의 사이클이에요. 그걸 아이들이 모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네가 60이 될 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바람이 불 때도, 눈보라가 칠 때도 있겠지만 그걸 모두 겪어내 보라고요. 삶이라는 것, 참 살아볼 만한 거다. 이렇게 인식을 하면 고단한 삶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정리=김민영(프리랜서 작가)

◆정재승(39)=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KAIST 물리학과 박사, 예일의대 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2009년 다보스 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 선정. 저서 『과학콘서트』, 『크로스』(진중권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김호 공저) 등.

◆조한혜정(63)=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미국 UCLA 문화인류학 박사(79년). 영국 캠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 일본 동경도립대 인문학부 객원교수 등 역임. 저서 『한국의 여성과 남성』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교실이 돌아왔다』(공저) 등.

중앙일보-인터넷서점 예스24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엽니다

중앙일보와 인터넷서점 예스24가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를 만나 우리 시대를 들여다보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대담 동영상은 캠페인 홈페이지(http://inmun.yes24.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분야별 추천 도서를 읽고 홈페이지에 서평을 올리면 김보일 교사(배문고·국어)가 매달 우수작을 선정해 글쓰기 지도를 해줍니다. 선정된 분에겐 도서지원금도 드립니다. 이택광(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저술가 박권일(『88만원 세대』 공동 저자), 정혜윤 PD(CBS 라디오), 강신주 박사(철학)의 인문칼럼도 캠페인 홈페이지에 연재됩니다.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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