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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우리가 리비아 돕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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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

지난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TNC)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시민군 거점인 벵가지를 찾았다. 리비아 내전이 일어난 뒤 서방 국가 외무장관으로서는 첫 방문이었다.

 리비아에서 나는 22년 전의 내 조국 폴란드를 떠올렸다. 현재 리비아는 폴란드에서 첫 자유선거가 열리고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의 동유럽과 비견할 수 있다. 물론 당시 폴란드는 최악의 폭력사태로 치닫고 있는 리비아와 달리 비교적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에 맞선 시민군이 국가의 향후 수십 년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22년 전의 폴란드와 흡사하다.

 리비아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끝나면 새로운 리비아를 이끌 과도국가위원회는 많은 질문들 앞에 놓일 것이다. 카다피 정부에서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어떻게 군과 경찰을 통제할 것인가? 새로운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의원내각제인가? 20여 년 전 동유럽 구(舊)공산권 국가들은 이들 질문에 각기 다른 답을 내렸다. 그 선택에 따라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구소련 중앙아시아국가 등이 재건돼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를 비롯해 중동 민주화를 주도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동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은 시간과 고통, 인내를 수반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 열매는 맺어진다. 폴란드는 올해 하반기 최초로 유럽연합(EU) 의장국이 된다. 민주화를 이룬 지 22년 만에 유럽을 6개월 동안 이끌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수백만의 중동·북아프리카 시민들은 지금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하고 있다. 이에 맞춰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모로코 국왕은 최근 국민들에게 헌법 개정을 약속했다. 개정안에는 국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공의 참여를 보장하고 사법권을 독립시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중동 국가 카타르도 리비아 사태를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카타르 언론 ‘알자지라’는 아랍의 변혁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벵가지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TNC 인사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약속했다. 그 보상으로 바라는 것은 하나다. TNC가 중동·북아프리카에서 투명한 민주주의 정부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폴란드는 TNC 인사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다. 이미 폴란드는 중동 민주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이 민주화에 성공한 튀니지를 찾아 헌법 개정과 선거제도 정착을 도운 일이 좋은 사례다.

 폴란드뿐만이 아니다. EU 국가들은 북아프리카 지역에 재정적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단 유럽이 돕는 동안 아랍 국가들은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고 자립할 역량을 키워야 한다. 동유럽 구공산권 국가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지속적인 개혁은 결국 외부의 지원이 아닌 자국 국민들의 힘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
정리=남형석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