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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종로통 닭한마리까지 맛보는 미슐랭 … 이것이 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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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진옥화할매닭한마리집’은 서울 종로 생선구이 골목에 있었다. 18일 그 집을 찾아갔다. ‘미슐랭 가이드’(사진) 때문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이 집을 “이국적 풍경의 시장골목에 있다. 한국식 그릇에 닭 한 마리가 올려져 나오는데 단순해 보이지만 정말 맛있다”고 소개했다. 주문을 했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주머니가 닭 한 마리를 통째 양푼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엽기 음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식당에는 외국인 손님이 여럿 있었다.

 17일 미슐랭 동아시아 총괄사장 버나드 델마스(56)는 ‘레드 가이드’ 출간에 관한 기준을 밝혔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하고, 우리가 선택할 만한 수준의 고급 레스토랑이 있고, 음식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이 높아야 한다.” 이 기준을 따르면 우리는 제법 바탕이 튼튼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유구한 음식문화를 자랑한다. ‘미슐랭 한국편’은 “김치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예방 효과가, 된장·간장·고추장은 노화방지 효능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천일염은 세계 최고 명품이라는 프랑스 게랑드(Gerande) 소금보다 미네랄을 두 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 또한 최근 부쩍 증가했다. 버나드 사장도 이 부분은 알고 있었다.

 남은 건 하나다. 그들이 선택할 만한 레스토랑이다. 그렇다고 ‘서양 것’을 베낄 필요는 없다. 미슐랭은 한국 고유의 음식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충무김밥을 먹으러 통영까지 갔고 ‘청진옥’에서 선짓국을 들이마셨다. 이제 외국인에게 혐오스러운 우리 음식문화는 없다. 미슐랭은 우리 개고기 문화도 마구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한 평가는 국력하고도 상관이 있다. 미슐랭이 종로통 닭한마리집을 높이 산 것도 우리 국력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은 17일 “이르면 내년 ‘레드 가이드’가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 미슐랭 암행어사들이 전국 식당을 훑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큰 걱정은 없다. 이미 ‘우리 것’을 서양에서 먼저 알아보고 있다. 최초의 ‘미슐랭 한국편’이 그 증거다. 한식 세계화는 미슐랭 덕분에 의미 있는 한걸음을 내디뎠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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