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漢字, 세상을 말하다]한자 성어로 전개된 미·중 덕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지도자를 만나려면 한자 성어(成語) 서너 개쯤은 챙겨야 하는 세상이다. 지난 9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중 경제전략대화의 만찬장 풍경이 그랬다.

가장 먼저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단상에 올라섰다. 그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로 환영사를 시작했다. 논어 첫 구절이다. 중국 측 참석자들은 그의 중국어 발음에 환호했다. ‘유복동향 유난동당(有福同享 有難同當)’이라는 말도 했다. ‘복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어려움이 있으면 같이 헤쳐나가자’는 뜻. 청(淸)나라 문장가인 황소배(黃小配)가 쓴 입재번화몽(<5EFF>載繁華夢)에 뿌리를 둔 말이다. 원전은 ‘우리는 형제, 마땅히 복이 있으면 함께 나눠야지요(彼此兄弟, 有福同享)’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이빙궈(戴秉國·대병국) 중국 국무위원이 답사에 나섰다. 그는 미·중 관계 증진을 강조하며 ‘하정결심 배제만난(下定決心 排除萬難:굳게 결심하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자)’이라고 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쓴 우공이산(愚公移山)에 나오는 말이다. 다이 위원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오의 글에는 ‘희생을 겁내지 말고 승리를 쟁취하라’는 말이 이어진다.

이어 등단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라는 말로 화답했다.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과 마주치면 다리를 세운다’는 뜻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원전이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는 유비에게 쫓기는 신세, 이때 한 장수가 ‘길이 좁고 땅이 질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듭니다’고 했다. 이에 조조는 ‘군사가 이동 중에 산을 만나면 길을 내야 하고(軍旅逢山開路), 물을 만나면 다리를 세워서라도(遇水疊橋) 나가야 하거늘 땅이 질다고 움직이지 않으니 무슨 도리인가’라며 호통을 쳤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

클린턴 장관이 한마디 더한다. 양국 관계는 ‘니중유아 아중유니(<4F60>中有我 我中有<4F60>)’ 수준이라는 얘기였다. ‘너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너가 있다’는 말. 사랑하는 남녀가 나누는 밀어(蜜語) 수준이다. 오가는 한자 성어에 두 나라는 ‘연인 관계’로 발전한 듯싶다. 성어의 힘이런가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