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선진화, 눈속임으론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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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35면

남산의 봄은 온통 꽃의 향연이다. 개나리·철쭉·벚꽃·아카시아로 이어진다. 방위사업청은 국방부 일부와 조달본부, 각 군 사업단을 통합해 2006년 출범했다. 사무실은 남산 기슭 양지바른 자리에 있는 조달본부를 물려받았다. 업무 행태도 조달본부 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사업관리·정책·계약 업무 간의 연계성 부족과 칸막이식 인사 관행 등을 보면 마치 ‘한 지붕 세 가족’ 같다. 사무실만 물려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마치 필자가 사무관 초임 시절이던 1980년대 초반 산업정책을 보는 것 같다. 군은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요구하고, 방사청은 그에 따라 국내 개발 또는 국외 구매를 결정하고, 국방과학연구소는 정부에서 시키는 과제들을 연구하고, 방산업체는 국과연이 개발해 준 기술로 생산만 잘하면 된다. 들어간 비용은 모두 실비 정산해 주기 때문에 부도는 있을 수 없다. 그런 과정에서 원가 부정과 부실 무기 문제가 적지 않았다. 효율은 둘째고, 효과성에 올인하는 업무 구도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효과성에도 문제가 생겼다. 30년간 연구개발을 해 왔는데 무기 수입은 세계 2위인 반면 수출은 15위에 불과하다. ‘사업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불량 무기 문제가 이어졌다. 다행히 T-50 고등훈련기와 같은 효자 때문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불량 무기로는 전력화가 불가능하다. 수출은 꿈도 못 꾼다. 외부 환경 변화에 맞게 내부 규제체계가 바뀌지 못한 결과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민간 기술이 앞선다. 현대는 전자무기시대다. 우리의 정보기술(IT) 실력은 세계 톱 클래스다. 방위산업의 기본 인프라인 자동차·조선도 마찬가지다. 국방비 규모는 세계 8위로 적지 않다. 실험시설도 많아졌고, 과도한(?) 교육열 덕에 연구인력도 국내외에 포진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시장 기능을 살려내야 한다. 정부 독점 무기개발시대의 각종 규제와 자원배분체계를 시장 규율로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복원하고 비리 소지를 차단할 수 있다. 그간 등한시했던 품질 규제는 대폭 강화해야 한다.

우리 방위산업은 완전히 정부 정책에 의존해 왔다. 가격, 투자 의사, 판매 계획 등을 기업이 자유로이 결정하기 어려웠다. 방위산업이라기보다 방위사업에 가깝다. 이스라엘을 보면 상업개발이 일반화돼 있고 무기산업에도 중소 벤처기업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규제가 시장화를 막았고, 기업들도 여기에 안주해 왔다. 기술과 시장이 열악했던 초창기라면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가보상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원가 보상방식이다 보니 원가를 부풀려야 이윤이 더 커진다. 각종 수치·회계 조작이 동원된다. 각종 비리와 부실이 온존할 수 있는 구조다. 경쟁 영역을 늘리되 가격·품질 경쟁이 어렵다면 인센티브 제공 원칙이라도 분명히 지켜 제한경쟁을 확대해야 한다.

일반 상품은 신제품 출시 때 기업들이 가장 품질에 신경 쓴다. 방산 분야에서는 납품만 하면 된다는 타성이 엿보인다. 일단 납품하면 운영 책임이 군으로 넘어가므로 방사청은 애프터서비스 부담이 없다. 시험 평가도 부족하다. 앞으로는 소량 생산 뒤 일선 부대에 배치, 1년 정도 사용하면서 하자를 점검한 뒤 양산토록 할 필요가 있다.

턴키방식 공사처럼 민간이 수행하는 책임감리제도도 필요하다. 지금은 공무원과 군이 수시로 현장에 가서 감리감독을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설계 문제인지, 제조 잘못인지, 감독 책임인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책임감리를 하면 비용은 더 들겠지만 민간 감리가 있어야 수요예측, 사업관리, 발주 및 제작 등 모든 과정이 투명해지고 참여주체 간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해진다.

결코 쉽지 않은 개혁과제들이다. 방위사업청만 변하면 안 된다. 산업생태계 개선을 위해 민관이 합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450년 전에 세계 최강의 함포와 일본 함선 5∼10척에 맞먹는 판옥선을 만든 나라다. 우리의 산업 위상이나 기술 개발 능력, 수많은 과학인재 등을 감안하면 잠재력이 크다. 다만 우회도로가 좀 길었다. 시장 실패가 아니라 잠재력을 살리지 못한 정책 탓이다. 다행인 것은 시장 실패보다 정책 실패가 교정이 쉽다는 점이다. 방산업체들도 이젠 직행로를 잘 알고 있다. ‘방산 선진화’, 반드시 이뤄 내야 하고, 할 수 있는 과제다.



노대래 서울대 법학과 졸업. 행시 23회(79년). 재경부 기술정보과장, 주미 대사관 재경참사관, 재경부 정책조정국장을 거쳐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지난 3월 방위사업청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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