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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도 예술도 종교도 뇌 비밀 풀어 해석하는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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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10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때 어떤 옷, 어떤 제스처, 어떤 말을 해야만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인지 유권자들의 뇌활동 반응을 찍어 판단한 뒤 정교한 선거전략을 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에선 민주·공화 양당이 10여 년 전부터 ‘신경 선거전’을 치르기 위해 ‘선거 신경전’을 벌여왔다.

뇌공학이 펼칠 세상,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신경정치학(Neuropolitics)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뇌영상 기술을 통해 정당 지지자들의 인지성향을 분석한다. 정부 정책을 마련할 땐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긍정적으로 인식될지도 국민의 뇌반응을 모니터링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안에 이런 연구들이 가시화될 것 같다.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은 뇌공학이 경영학과 만나 경영성과를 내는 데 이용하는 분야다. 소비자의 뇌반응을 찍어 회사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제품 디자인·포장·디스플레이, 심지어 광고·홍보 전략을 짜는 데 이용한다.

미국에선 수십 년간 지켜오던 ‘캠벨 수프의 전통 패키지’가 뉴로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바뀌었다. 세계적인 의류업체 갭(Gap)도 뉴로마케팅 기법을 통해 로고를 교체했다. 우리나라에선 기아자동차가 이를 활용해 K7 브랜드를 내놓아 성공했다. 미국에는 뉴로포커스 등 뉴로마케팅 전문회사가 30여 개 있으며, 전 세계에 100여 개의 전문 리서치업체가 있다. 시장 규모도 수천억원대에 달해 향후 10년 안에 급성장할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마케팅 분야를 넘어 신경경영학·신경금융학 분야도 부상될 전망이다. 예컨대 월스트리트의 남성 펀드매니저들의 ‘위험 감수 성향’이 강해 호황 땐 많은 수익을 냈으나, 불황 땐 반대로 회피본능(loss-aversion)이 심해져 경기침체가 심화됐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2025년, 금융투자회사들은 펀드매니저 채용 시 뇌활동 측정을 통해 위기대응 능력과 창의력 등을 평가할 수 있다.

영국 런던대 세미르 제키 교수의 연구팀에 의해 처음 시도된 ‘신경미학’ 분야도 흥미롭다. 신경미학자들은 빈센트 반 고흐나 폴 고갱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동안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한다. 영국의 팝가수 스팅은 ‘음악을 창작하는 동안 자신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다’며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 안에 들어가 악상을 구상했다. 스팅의 뇌를 연구했던 스탠퍼드대 대니얼 레비턴 교수는 “10∼20년 후엔 인류가 왜 음악에 열광하고, 원시시대부터 그림을 그려왔으며, 무용과 발레를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신경미학을 통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뇌공학이 이끌 미래사회가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다. 뇌를 깊이 이해할수록, 인간 집단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시도 또한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이나 상업적인 목적과 결탁되면 ‘빅 브러더’가 지배하는 위험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일례로, 인간의 뇌가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디자인·브랜드·포장·광고를 만들려는 기업의 뉴로마케팅 전략은 제품의 실제 성능을 현혹하는 기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 2005년 클레몬트대 폴 착 교수팀은 ‘애착 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낯선 영업사원에 대한 경계심을 줄이고, 금융업체의 투자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만든다’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래에는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뿌리는 영업사원이 아파트 단지에 출몰해 가정주부의 지갑을 열게 하고, 보험 가입을 종용하고, 투자를 현혹하는 사건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신경윤리학 분야는 인간의 도덕적인 판단이 뇌 속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 신경과학 차원의 해답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만약 신경윤리학이 ‘인간 범죄의 일부분이 순수한 자유의지가 아닌 신경생물학적 결함에 의한 불가피한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범죄자들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대뇌 신경생물학적 결함이 발견돼,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인 예방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학교와 직장에서 공부와 일만 하도록 감시·통제하는 시스템이 발달돼 곳곳에서 뇌파 감지장치가 수면뇌파를 검출하거나 집중도 레벨을 모니터링한다면 과연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인간은 새로운 고민과 도전에 부닥칠 것이다.

신경과학과 뇌공학은 ‘종교의 기원’에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 토머스 제퍼슨대 앤드루 뉴버그 교수는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최초로 촬영한 과학자다. 그는 설령 종교가 다를지라도 신자들이 신을 영접하는 순간, 대뇌 두정엽 부근의 일정 영역이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이 영역에 자극을 주면 신을 영접했다는 진술을 하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뇌에는 종교적 활동을 하도록 마련된 대뇌 영역이 있으며, 이것의 활동으로 종교적 체험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연구가 향후 10∼20년 안에 발전해 대뇌 활동만으로 ‘종교적 체험’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 이상으로 뜨거운 논란을 낳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선 이미 SF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뇌공학 기술이 원시적으로나마 구현되고 있다. 이 기술이 어느 날 불쑥 세상에 나온 뒤에야 철학·사회·윤리적 문제를 논의하기엔 때가 늦을 것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또는 개인의 삶을 통제·조종하는 기술에 대해 지금부터 현명한 규제 절차를 마련하는 게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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