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이 책과 주말을!] '마음으로 먹는 밥 공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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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마음으로 먹는 밥 공양'
호산스님 지음, 북로드, 216쪽, 1만원

"차나 한잔 마시게."

당나라 조주 선사의 유명한 선문답이다.

"여기에 처음 왔는가 아니면 온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온 적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이에게는 물론 "온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이 말을 했다던가. 심지어 "왜 온 적이 있다 해도 차를 마시라고, 온 적이 없다 해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니. 언뜻 엉뚱해보이지만 새길수록 따뜻한 여운이 스며 나오는 말이다. 조주 선사의 선문답에서 '차 한 잔'을 '밥 한 그릇'으로 바꾸면 그대로 이 책의 화두가 된다.

지은이인 호산 스님은 절집에서 깨우친 밥의 신비로움을 깔끔한 문체로 적고 있다.그는 밥이 곧 생명이며 쌀 한 톨 한 톨이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라고 강조한다. 쌀 미(米)자는 여덟 팔(八)자 두 개가 합친 모양으로 볍씨를 논에 뿌려 흰 쌀이 되기까지 사람 손이 여든여덟 번 가면서 귀해지기 때문에 생긴 글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은 곧 정신수양이라고 지적한다. 한 톨의 쌀, 한끼의 밥도 탐심을 버리고 오직 도업을 닦기 위해 먹으라는 뜻이 담긴 '발우공양' 수행은 절집의 기초수행이다. 인간은 누구나 밥을 먹어 주린 배를 달랠 줄은 알지만 불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 고칠 줄 알기는 쉽지 않다.

스님들이 밥을 먹는 '발우공양'은 육신과 영혼 모두를 채우는 의식이다. 죽비 소리와 함께 발우에 음식을 덜고, 먹고, 물로 그릇을 헹구고 그 물을 마시는 일련의 과정이 엄숙하게 이어진다.

밥은 사랑을 낳는다. 철학의 대가 칸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밥을 먹을 때다"고 말했다. '밥'이라는 죽비로 우리 삶의 타성을 깨우는 맑은 책이다. 지은이는 해인사에서 출가해 현재 달마사 주지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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