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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지기 로저스 살 때 소로스는 팔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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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22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은값이 추락했다. 그러면서 40년 지기인 두 투자 거물의 관계가 얄궂게 됐다.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81)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과 ‘상품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69)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로저스 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지속적으로 은값 상승을 예고했고, 실제 은은 올 들어 4월까지 56%나 올랐다. 그는 5월 1~2일자 중앙SUNDAY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에 금·은을 조금 샀다. 금보다는 은이 더 유망해 보인다. 은값은 곧 온스당 50달러를 넘어설 것이다. 사상 최고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은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은 선물가격은 지난달 말 온스당 48.6달러에서 5일(현지시간) 36.2달러로 26%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은값의 움직임에 투기세력이 개입돼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주인공 중 한 사람은 1970년 로저스와 함께 사실상 최초의 글로벌 헤지펀드인 ‘퀀텀펀드’를 설립한 소로스 회장으로 파악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3일 “소로스펀드가 2년 동안 금과 은을 사 모았다가 지난 한 달간 대부분 팔아치웠다”고 보도했다. 로저스가 큰 소리로 은을 사라고 외치는 동안 ‘어제의 동지’인 소로스는 조용히 차익 실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로스의 매도 뉴스가 전해지자 투자자들은 앞다퉈 은을 내놨고, 하락 폭은 더 커졌다.

두 사람은 퀀텀펀드를 운용하면서 80년 로저스가 떠날 때까지 10년간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낸 최고의 사업파트너였다. 결별 역시 깔끔했다. 화려한 생활 속에 모험을 즐기는 로저스는 세계일주를 떠났고, 소로스는 검소한 일상을 유지하며 펀드 규모를 계속 키웠다. 98년 로저스가 상품투자자로 현업에 복귀한 후에도 둘은 각자 스타일대로 투자를 하면서 거의 부딪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유로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공유했다. 지난해 상반기 그리스 재정위기 발생 당시 소로스가 “유로화가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고 하자, 로저스는 “15~20년 뒤엔 유로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8~19세기 미국서 금과 은, 교환 비율 1대15
그런 두 사람을 충돌하게 만든 은은 도대체 어떤 성격의 투자 상품일까. 은의 역사는 화폐의 역사와 함께한다. 은은 금보다는 가치가 떨어지지만 금값이 오를 때마다 대체재 성격을 띠었다. 미국의 경우 1792년에는 화폐주조법(Coinage Act)을 제정해 달러화의 법적 지위를 마련하면서 은화를 주조했다. 1달러를 순은 24.1g의 가치에 고정하고, 금과 은을 1대 15의 비율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금과 더불어 은을 화폐로 사용하는 이른바 ‘금은복본위제’를 도입한 것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박정수 교수는 “미국이 화폐가치가 금에만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금의 공급량에 따라 가치가 오르내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은화를 제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873년 은본위제는 폐지됐고, 단일 금본위제가 시행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진영 수석연구원은 “주식회사가 발달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달러 지폐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 데다, 은 말고도 주식을 비롯한 다른 투자 대상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은 전통적으로 자산가치가 은보다 높았기 때문에 1933년에야 본위제가 폐지됐다.

금=대형주, 은=중소형주
그렇다고 해서 금과 은의 화폐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달러화 약세와 인플레이션이 감지되면 금은 위험을 헤지하는 안전자산으로서 각광받으며 가격이 올랐다. 금값이 급등한 뒤에는 은 가격이 따라 오르는 순환관계가 형성됐다.

동양종금증권 이승제 연구원은 “주식으로 치자면 금이 대형주이고, 은은 중소형주다. 대형주의 상승 랠리 후에 중소형주로 매수세가 몰리는 경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은은 평소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금보다 투기 세력이 가격을 조작하기가 쉽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가격 변동폭도 더 크고, 투자위험도 더 많은 편이다.

이 같은 관계를 이용해 은 투기에 나섰다가 은값의 대폭락을 가져온 사건이 바로 80년 3월 27일의 ‘은의 목요일’(Silver Thursday)이다. 70년대 베트남전쟁과 오일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금값이 뛰자 미국 석유 재벌인 윌리엄 헌트·넬슨 헌트 형제는 대체재인 은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80년 당시 전 세계 한 해 공급량의 절반 수준인 5600여t을 모았다. 은값은 1년 새 온스당 6달러에서 최고 48.7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뉴욕상업거래소가 개입했다. 은 선물을 사기 위해 맡겨야 하는 증거금 비율을 높이자 은값은 나흘 동안 온스당 15달러까지 폭락했다. 증거금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은을 샀던 투자자들의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헌트 형제는 1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

소로스는 헌트 형제 전철 피했다
31년이 지난 올해 5월 5일은 제2의 ‘은의 목요일’로 기록될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은값은 이날 하루 동안만 8%가 떨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80년 헌트 형제 사건 이후 은이 최대의 조정을 받은 날”이라고 규정했다. 이번에는 뉴욕상업거래소의 상품거래소(COMEX)를 소유하고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이 나섰다. CME는 보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증거금 비율을 총 67% 올렸다. 물론 소로스는 헌트 형제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증거금 인상을 앞두고 은을 판 소로스의 감각이 뛰어났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향후 은값의 방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UBS의 귀금속 담당 애널리스트인 에델 툴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은 시장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매도세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제 연구원은 “과거 5년 동안 금값은 은값의 평균 58배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은의 급등으로 30배 수준까지 내려왔었다. 평균치에 근접하려면 은값이 온스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로저스는 5일 미국의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은값이 한 달간 25% 올랐는데 조정받는 건 당연하다. 은값이 (단기적으로) 떨어졌다면 나 자신이 은을 더 매수할 만큼 현명했으면 좋겠다. 87년 블랙먼데이 때 주가가 30~40% 하락했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주식을 더 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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