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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잡스는 해군 아닌 해적 되길 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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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제이 엘리엇
애플 전 수석 부사장

스티브 잡스(56). 그는 애플의 창업주다. 이 시대 최고의 ‘창조적 혁신가’로 꼽힌다. 아이폰·아이패드처럼 세상에 없던 제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현대인의 삶을 바꿔놓았다. 잡스의 한마디에 세상이 요동친다. 그의 머릿속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는 은둔자에 가깝다.

j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잡스란 사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잡스의 왼팔’(잡스는 왼손잡이다) 격으로 애플의 초석을 함께 다진 제이 엘리엇(69)을 통해서다. 1980~86년 애플의 수석부사장으로 일한 그는 최근 『아이리더십(원제: The Steve Jobs Way)』을 출간해 화제가 됐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회사 ‘누벨’을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가토스에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전화, e-메일 등으로 수차례 이뤄졌다.

김준술·박현영 기자

●잡스 리더십의 핵심은 뭔가.

 “그는 ‘상품’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단순하게 쓸 만한 물건을 만들고자 했다. 훌륭한 디자인과 기능은 기본이다. 그의 상품은 시장에 나오면 언제나 ‘유일한 것’이 된다. ‘애플’이란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문화를 만들어냈다. 잡스는 인재 선발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는 전략이다. 모두 소속감을 갖게 된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는 조직이 된다.”

●잡스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의 소통법은 어땠나.

 “매우 열려 있고, 직설적이다. 나쁜 아이디어에 대해선 가차없다. ‘주의력 지속 시간’이 짧다. 새로운 생각·방식·비전을 얘기하지 않으면 인내심을 잃는다. 관료적 성질을 내포한 아이디어는 천성적으로 싫어한다. 옳지 않은 정보에서 짜낸 아이디어도 매우 싫어한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어느 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불렀다. ‘회계도 애플식으로 하라’고 주문하더라. 회계란 게 원래 국제 기준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상품 제작 비용과 기대수익을 공인된 회계법보다 더 단순히 만들어 봐요.’ 한눈에 볼 수 있게 분석하라는 주문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해내지 못했다. 곧 교체됐다. 새로 온 CFO는 결국 ‘애플식 회계’를 만들어냈다. 그게 잡스 스타일이다.”

●애플 직원들은 자신을 기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데. 잡스의 리더십 때문인가.

 “잡스는 신제품 출시 행사에 공을 들인다. 세계 미디어와 소비자가 주목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의미가 다르다. 잡스는 그 자리에서 직원들이 일군 ‘노동의 과실’을 대표한다. 직원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걸 모두 자축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잡스는 상품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정과 헌신이 있다. 그게 팀원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최근 잡스는 병가를 내고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 뒤 열린 아이패드2 출시 행사엔 무대에 섰다. 그의 마음이 상품 그 자체에 있다는 걸 여실히 입증한 사례다.”

●잡스를 ‘최고의 제품왕(Product Czar)’으로 만든 원천은 뭔가.

 “호기심과 열정이다. 그는 평생 음악에 심취했다. 디자인과 캘리그래피(서체)에도 관심이 컸다. 이게 업무로 연결됐다. 아이튠스와 아이팟은 욕망이 모태다. 음악에 대한 잡스의 사랑이 그 안에 있다.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구가 상품으로 분출됐다. 그는 자기 고집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열린 사고를 했다. 음양의 조화라고 할까. 무엇보다 그는 늘 제품의 ‘가장 열렬한 사용자(champion of product)’였다. 소비자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했다. 자신도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상품의 열렬한 사용자가 돼야 한다.”

●왜 그는 단순함에 집착하나. 아이폰 때는 ‘버튼은 오직 하나’라는 원칙을 밀어붙였다.

 “불교적 믿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태도다. 잡스는 상품의 다양한 기능엔 주목하지 않았다. 얼마나 단순하냐를 중시했다. 매킨토시 때부터 애플은 복잡한 사용자 설명서를 안 만들었다. 포장 박스를 여는 순간부터 쉬워야 한다는 믿음에서 그랬다. 지금도 아이폰을 사면 설명서가 없다. 꺼내서 바로 쓴다.”

●그의 삶도 단순한가.

 “내가 가봤던 그의 집은 가구도 별로 없고 아주 단순했다.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은 있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물건만을 갖고 살았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삶에 변화를 많이 주지 않았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회의실. 스티브 잡스(가운데)가 이끄는 매킨토시 개발팀이 점심을 먹으며 회의를 하고 있다. 왼손잡이인 스티브 잡스의 ‘왼팔’ 격인 제이 엘리엇이 잡스의 왼편(오른쪽에서 둘째)에 앉아 있다.

●당신은 1980년 잡스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일했다. 그의 사람 쓰는 법이 원래 그런가.

 “그때 나는 잡스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위치에 있었다. IBM 출신이고(IBM은 애플의 적이었다) 양복과 넥타이를 맨 보수적 남자로 보였을 테니까. 잡스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히피 같았다. 하지만 그는 양복 속에 감춰진 내 열정과 제품 비전을 알아채더라. 그러곤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사람에 관한 잡스의 다른 소신이 있다. ‘B급 인재를 쓰면 그들이 B급과 C급만 데려온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잡스가 직원들에게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돼라(Pirates! Not the Navy!)’라고 적힌 티셔츠를 나눠줬다는데.

 “잡스의 ‘사람 쓰는 법’이 반영된 이벤트였다. 해적은 무법적이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혁명 정신을 상징한다. 해군은 몸집이 커서 둔하다. 관료화되고 지위만을 유지하려 하는 권위주의적 직원을 말한다. 해적은 다르다. 작은 그룹이지만 매우 조직화돼 있다. 그래서 잡스가 말한 해적이란 팀워크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기여와 헌신 그리고 책임을 아는 직원을 이른다. 특히 잡스는 사내 정치를 하지 않고,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인물을 많이 썼다.”

●애플이 점점 커지면 그런 장점을 잃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업문화 자체가 ‘기업가 정신’에 뿌리를 박고 있다. 다만 지속적인 감시 장치는 필요할 것이다. 관료화나 사내 정치가 조직에 스며들지 않도록 말이다. 사람을 뽑을 때도 물 흐리지 않을 사람들을 선택해야 한다. 잡스는 조직을 정치화하거나 자기가 생각했던 자질의 리더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바꿔버린다. 그런 선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 창업자)처럼 컴퓨터 지식이 없었지만 성공했다.

 “반드시 최고의 기술자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기술자도 아닌 잡스가 성공한 비결은 뭘까. 기술 사용에 대한 ‘비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하다. 기술이 아무리 위대해도 소비자 수준에서 적용 가능해야 한다. 보유한 기술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회사가 많다. 너무 기술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이 장기다. 잡스의 비즈니스 철학이기도 한데.

 “잡스는 상품 전체를 통제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통합적 제품 개발(Holistic Product Development)’이다. 잡스는 애플을 12년간 떠나 있다 97년 복귀할 때 이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애플을 떠나 있던 동안 세 가지 교훈을 배웠다. ‘통합적 상품, 소비자 우선주의, 그리고 자신의 비전을 지지하는 이사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른 기업은 왜 애플처럼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못하나.

 “이미 말했지만 기술적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기술은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걸 모른다. 주주들을 의식해 그렇다. 재정·판매 실적이 목표가 되면 ‘상품’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삼성은 위대한 회사지만 구글의 소프트웨어인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만든다. 컴퓨터도 마이크로스프트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했다. 삼성이 상품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삼성 TV를 갖고 있다. 정말 최고다. 그 이유는 삼성TV가 통합적 상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상품군은 그게 안 된다. 그게 삼성이 놓친 부분이다.”

●그래도 책에서 삼성을 애플의 최대 경쟁자로 꼽았다.

 “삼성은 기술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경쟁력 있는 가격에 내놓는다. 다만 통합적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게 한 가지 단점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약한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상품에 관한 한 애플 같은 브랜드를 창조하지 못했다. TV를 사러 매장에 가면 50여 개 브랜드가 있다. 여기서 돋보이지 않는다. 반면 애플은 ‘유통의 역학’까지 바꿔놓고 있다. 애플 매장에 들어서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모든 게 애플이다. 이 부분은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엔 애플이 삼성에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을 견제하려는 시도인가.

 “그렇다. 경쟁사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만드는 기업 전략의 하나다. 휴대전화 회사들 간에 50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애플은 사실 모든 면에서 후발주자 아닌가. 한계가 있지 않을까.

 "휴대전화가 나온 뒤 아이폰이 나온 건 맞다. 그러나 아이폰은 사실 전화기가 아니라 처음 만들어진 ‘손 안의(hand-held)’ 미디어 기기다. 아이패드도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시장에 늦게 진입했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늦은 게 아니다. 전혀 다른 방식이니까.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휴대전화나 컴퓨터와 경쟁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애플은 어디로 갈까.

 “콘텐트 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 같다. TV 쪽을 강화할 것이며, 동영상 등의 서비스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처럼 된다는 것

스티브 잡스

제품 개발(Product Czar)

“권위적 개발자·경영자론 안 된다. 소비자가 돼라.”

잡스는 과거 포르셰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 시계를 칭찬하자 잡스는 얼른 손목에서 빼내 선물로 줬다. 디자인을 알아본 사람에 대한 경의였다. 이런 식으로 선물하기 위해 그는 집무실에 개당 2000달러짜리 시계를 한 상자나 사뒀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잡스식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MP3 플레이어와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존 제품을 혐오했다. 무겁고 꼴사납다는 이유로. 자신을 위해 기획한 제품이지만 동시에 모든 다른 이가 열광하는 물건. 그것이 아이팟과 아이폰이었다.

인재 채용(Talent Rules)

“해군이 아닌 해적을 끌어 와라.”

‘범생’ 직원들은 사절했다. 잡스는 해적처럼 도전과 자유의식이 충만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탁월했다. 맥 컴퓨터를 개발할 때였다. 앤디라는 엔지니어를 데려오려 했다. 그가 말했다. “남은 일 마치려면 며칠 더 걸려요.” 잡스는 그 자리에서 앤디의 컴퓨터 플러그를 뽑곤 밖으로 나가 자신의 벤츠에 PC를 던졌다. 잡스는 그런 식이었다. 해적 두목 같은.

조직문화(Team Sports)

“예스맨은 거부하라.”

잡스는 1985년 애플을 나와 97년에 복귀하면서 디자인실장인 조너선 아이브와 아이맥 컴퓨터 원형을 개발했다. “우리가 설계도를 들고 엔니지어에게 갔을 때 이러더군요. ‘불가능합니다. 38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러나 우린 그대로 만들겠다고 했죠.” 잡스 고집으로 대히트 작품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그가 평소 강조한 말이 있다. “우리는 구텐베르크(활자 개발)가 했던, 그런 창조적 일을 해야 한다.”

자료=『아이리더십』(웅진지식하우스)

팀 쿡, 조너선 아이브, 필 실러 … 잡스의 리더십 몸에 익혔다

건강 좋지 않은 잡스 받치는 애플의 3인방

초췌한 스티브 잡스. 건강이 좋지 않다.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그가 없다면 애플은 어떻게 될까. 지금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제이 엘리엇은 “잡스가 쌓은 아이리더십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보적 아이리더십을 체화한 선수들이 바로 애플의 ‘수뇌부 3인방’이다.

남궁유 기자

조너선 아이브
수석부사장 겸 디자인 총괄

영국 출신으로 일찌감치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잡스가 복귀하면서 내놓은 첫 히트작 ‘아이맥’(98년) 디자인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처음엔 어정쩡한 신세였다. 애플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지만 큰 주목을 못 받았다.

 그러나 잡스의 전폭적 지지로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컬러 아이맥은 베이지색의 지루한 컴퓨터 색상에서 벗어난 데다 투명 재질을 사용해 변화를 시도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그의 ‘디자인 특질’은 뭘까. 형태적 디자인에서 탈피해 알루미늄·유리 등 제품 질감이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제조 공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엔지니어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아이브는 가전제품을 쓰는 듯한 단순함을 복잡한 IT 기기에 적용해 대중적 친밀도를 높였다. 스타성도 갖추고 있다. 특유의 부드러운 억양과 호소력 있는 태도로 잡스 다음의 인지도를 누린다. 다만 전문가들은 잡스같이 디지털 세계의 흐름을 읽는 눈과 카리스마를 가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다. 기업 경영과 기술 영역에선 아직 훈련이 모자란다는 평가다.

팀 쿡
최고업무책임자(COO)

잡스의 후계 체제를 논할 때 널리 지목되는 파워맨이다. 2004년 잡스는 췌장암 수술을 받으며 경영 바통을 팀 쿡에게 맡겼다. 이때부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팀 쿡은 ‘골수 애플맨’이다. 14년간 잡스 뒤에서 묵묵히 일한 살림꾼이다. 2009년에도 잡스가 간이식 수술을 받던 6개월간 애플을 책임진 경험이 있다. 정작 그는 차세대 주자로 지목될 때마다 손사래를 친다. “잡스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극복할 과제다.”

 그는 1960년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출신이다. 고집이라면 잡스 못지않다. 독신이며 엄청난 스포츠광이다. 휴가 때엔 하이킹을 즐긴다. 나이키 이사회 임원을 맡을 정도다. 운동에서 그의 엄격한 자기관리가 엿보인다. 몸을 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 그때 e-메일을 보내 업무 지시를 내릴 정도다.

 잡스는 어떻게 그와 연(緣)을 맺었을까. 97년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쓸모없는 제품을 정리하고 싶었다. 새로운 인물을 물색 중이었다. 쿡은 12년간 IBM에서 일하다, 컴팩으로 옮겨 재고관리·부품조달을 총괄하고 있었다. 잡스는 그와 면담한 지 5분 만에 스카우트를 결정했다. 쿡이 컴팩으로 자리를 옮긴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던 회사였고, 주변에서 모두 입사를 만류했지만 잡스의 카리스마가 그를 움직였다.

 쿡은 입사 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예견하며 아시아에 힘을 쏟았다. 100개가 넘던 부품업체를 과감히 정리했다. 부품 조달을 대부분 아시아권으로 바꿨다. 조립공장은 중국으로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평균 90일분의 재고가 2년 만에 10일치 이하로 줄었다.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2007년 COO에 올랐다. 그가 세상을 보는 프리즘은 어떨까. “아이폰은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서 음식과 물 바로 아래에 있다. 결국 모든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으로 바뀔 것”이라고 자신을 보였다.

필 실러
해외시장 마케팅 수석부사장

그가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맥·아이팟·아이폰 같은 핵심 제품을 대중 눈높이에 맞춰 각인시키는 일이다. 97년에 애플에 합류했다. 넉넉한 외모 덕에 잡스와는 달리 시장과 돈독한 친밀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잡스를 대신해 제품 발표회장에 올라가 시연도 한다. 트위터(@pschiller)를 통해 사용자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잡스에 비해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이다. 다만 잡스가 ‘셜록 홈스’라면 필 실러는 ‘왓슨 박사’ 같은 관계라고 보기도 한다.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고 조직의 안정감을 불어넣는 역할이라는 얘기다. 잡스처럼 용수철 같은 인물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다

1 1998년 아이맥 : 일반 사용자를 위한 일체형 컴퓨터, 투명 플라스틱 재질과 과감한 컬러를 도입
2 2001년 아이팟 :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아이폰의 성공으로 이어진 제품
3 2003년 파워북 G4 : 티타늄 재질을 사용해 현재 유니보디 제품(알루미늄을 깎아 제작하는 방식)으로 발전
4 2007년 아이폰 : 터치 방식의 스마트폰 기준을 제시
5 2010년 아이패드:불확실하던 태블릿PC 시장에서 히트작으로 기록, 앱스토어 사용 환경을 극대화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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