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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포함한 희생자들 영혼 기뻐할 것, 이제 화해와 공존…극단적인 행동 사라져야"

미주중앙

입력

1일 오후 11시(동부시간). 김평겸(사진)씨는 다른 가족으로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TV를 켜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30분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김씨는 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둘째 아들 재훈씨는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맨해튼의 금융업체인 프레드 알저 매니지먼트에서 경제분석가로 일했다. 2001년 9월11일. 그날도 재훈씨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세계무역센터(WTC)로 출근해 일을 하다 화를 당했다. 9.11테러로 사망한 한인은 재훈씨를 포함해 모두 18명이다.

김씨는 끝내 재훈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장례식을 못 치러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집을 비운 것 같아 아들이 쓰던 방과 차도 한동안 그대로 두고 있었다.

10년이 흘렀다. 막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테러의 주범 빈 라덴이 사살됐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솟아 올라왔다. 맥이 풀리며 한숨도 나왔다.

김씨는 "빈 라덴이 숨어 있을 것이라던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다니 허무했다. 또 10년이나 지나서야 빈 라덴을 제거했다니 답답하다는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들을 포함해 희생자들의 영이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며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 희생자 가족이 전화를 통해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러나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겨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빈 라덴이 이슬람을 모두 대표하지 못한다. 극단적인 행동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9.11 한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를 맡았다. 또 아들의 영어이름을 딴 '앤드루 김 추모 장학재단'을 2003년 설립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아들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장학기금은 아들이 남긴 재산과 보상금 등으로 마련했다.

이날 김씨와 TV를 보던 아내 이화옥씨는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마냥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내다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김씨는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왔다.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욕=강이종행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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