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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오사마 빈 라덴 시신 확인의 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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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망했다. 그런데 신원을 알 수 있는 얼굴에 총을 맞아 별도의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2일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 얘기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사살된 사람이 과연 빈 라덴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는 “100%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신원 확인 방법을 동원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떤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됐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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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한 결정적인 증거는 DNA 감식 결과다. 시신에서 채취한 DNA와 빈 라덴 가족의 DNA를 비교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빈 라덴 자신의 DNA 시료가 확보됐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현재까지는 빈 라덴의 여동생 DNA가 감식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 미국 보스턴에서 여동생이 뇌종양으로 사망했는데, 정보당국이 언젠가 빈 라덴의 신원 확인을 위해 여동생의 뇌조직에서 DNA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빈 라덴은 자신의 친부모가 낳은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에 친형제나 친누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빈 라덴의 어머니는 이혼 후 재혼해 자식들을 낳았다. 어머니 쪽으로는 의붓 남동생이 셋이고 의붓 여동생이 하나 있다. 아버지 쪽으로는 52명의 의붓 형제자매가 있다.

 감식에 사용된 DNA의 주인인 여동생이 빈 라덴과 아버지가 같은지 아니면 어머니가 같은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빈 라덴과 어머니가 같을 경우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난자)로부터만 물려받는다. 간혹 정자의 미토콘드리아가 수정란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세포 분열 때 사라진다. 따라서 같은 어머니의 자식들 사이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거의 100% 일치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최동호 유전자분석팀장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전부 분석하는 게 아니고, 그중에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나타나는 부분(hypervariable region)’ 두 곳의 염기서열을 비교한다”고 설명했다.

 미토콘드리아 DNA 외에 세포핵에 존재하는 염색체 DNA를 비교했을 수도 있다. 염색체 DNA는 특정 구간에서 동일한 염기서열이 반복돼 나타나기도 하는데, ‘반복되는 짧은 염기서열(short tandem repeat, STR)’의 숫자를 비교하는 방법이다. 같은 길이의 DNA 구간 속에서도 사람마다 STR 숫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점에 착안한 방법이다. DNA를 부모에게 같이 물려받은 형제끼리는 STR 숫자가 같을 확률이 높다.

 빈 라덴의 DNA 감식이 사망 후 몇 시간 만에 신속히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헬기로 시신을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로 옮긴 뒤 곧바로 분석에 들어간 덕분이다. DNA 감식을 하려면 DNA를 복제해 숫자를 늘리고, 다시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른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보통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DNA 감식 외에도 이번처럼 특정 인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을 때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더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이 얼굴이나 신체의 특징을 바탕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시신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얼굴이나 신체 특징을 잘 아는 가족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빈 라덴의 아내 한 명도 그의 신원을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이번 작전에서 미군 측은 얼굴의 고유한 특징을 일치시켜 신원을 확인하는 ‘얼굴 인식(facial recognition)’ 기법도 사용했다. 얼굴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 특징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법의학자들은 100여 년 전부터 확립한 기준에 따라 11군데를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미간의 너비, 코의 길이, 양쪽 눈동자와 코밑을 잇는 삼각형의 각도와 길이 등이다. 삼각형은 얼굴이 완벽한 대칭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각도나 길이도 사람마다 다르다. 빈 라덴처럼 실물 측정치가 없이 사진만 있는 경우는 수염의 형태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모공이 없어지지 않는 한 수염이 난 형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은 “11군데가 같을 확률은 11만분의 1로 극히 희박하다”고 말했다. 빈 라덴의 키가 1m90㎝가 넘는 장신이라는 점도 그의 신원 확인에 간접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도됐다.

박방주(과학)·강찬수(환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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