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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를 처음 눕힌 사나이, 하늘의 링에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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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1963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복싱 경기에서 헨리 쿠퍼(왼쪽)의 왼손 훅을 맞은 무하마드 알리(당시 이름 캐시어스 클레이)가 캔버스에 주저앉고 있다. [AP=연합뉴스]

1963년 6월 18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세기의 흑백 대결이 열렸다. 헨리 쿠퍼와 무하마드 알리의 헤비급 논타이틀전. 세계의 이목이 웸블리에 쏠렸다. 알리는 특유의 스텝과 유연한 몸놀림으로 경기를 리드했다. 가드를 바짝 올린 쿠퍼는 우직하게 알리를 압박해 나갔다. 4회전 막판 쿠퍼의 왼손 훅이 알리의 턱에 꽂혔다. 알리는 맥없이 나뒹굴었다.

 알리가 다운당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알리는 평생 두 번 다운을 당했다. 두 번째로 알리를 다운시킨 선수는 라이벌 조 프레이저였다. 프레이저는 71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WBC·WBA 통합 헤비급 타이틀전 15회전에 장기인 왼손 훅으로 알리를 캔버스에 쓰러뜨렸다. 알리는 판정으로 졌고, 프레이저는 단숨에 거물 선수로 떠올랐다.

 알리의 두 차례 다운 장면은 모두 복싱 역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첫 다운을 뺏은 쿠퍼가 2일(한국시간) 사망했다. 76세. AP통신은 쿠퍼가 잉글랜드 남부 옥스테드에 있는 아들의 집에서 77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숙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많은 복싱팬과 영국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축구 스타 웨인 루니도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쿠퍼의 통산 전적은 40승1무14패. 영국 헤비급 챔피언과 유럽 챔피언을 지냈다. 알리와는 63, 66년 두 차례 맞붙었다. 첫 대결에서 다운을 빼앗았지만 판정패했다. 알리가 챔피언이 된 뒤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왼쪽 눈두덩 출혈로 6회전에 경기를 포기했다. 71년 헝가리 태생의 영국 복서 조 버그너에게 판정패한 뒤 은퇴했다. BBC가 뽑는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두 차례(67·70년) 받았다. 2000년에는 복서로는 최초로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쿠퍼는 세계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그가 선수로 활약한 시대는 플로이드 페터슨-소니 리스턴-알리-프레이저-조지 포먼으로 이어지는 흑인 철권의 시대였다. 로키 마르시아노의 뒤를 잇는 백인 챔피언의 출현은 복싱 시장의 오랜 갈망이었고 일종의 전통이었다. 인종차별도 있었다. 최초의 헤비급 챔피언 존 설리번은 백인으로서 흑인과의 대결을 거부했다. 1908년 흑인 최초로 챔피언이 된 잭 존슨은 평생 차별에 시달렸다.

 쿠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알리에게 진 다음 “알리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대신 쿠퍼는 알리와 친구가 돼 죽기 전까지 우정을 나눴다. 알리는 “나의 오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쿠퍼는 위대한 파이터이자 신사였다”고 애도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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