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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옻순 맛 들이면 약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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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옻순은 자랄수록 초록색이 진해지는데 7㎝가 넘기 전 따먹는 게 좋다. 자랄수록 독성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것! 이것! 이것! 옻순! 옻순! 옻순! 위험해도 좋소! 나빠져도 좋소! 우리는 여기에 목숨 걸었소오오! 우리는 여기에 목숨 걸었소오오!’(만화 『식객』 ‘옻순’ 편에 등장하는 노래)

외면하자고 다짐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찾게 되는 것, 옻순 같은 음식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옻순이 위험한 이유는 먹은 후 온몸에 옻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심까지가 어려울 뿐, 일단 맛을 본 사람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옻순을 다시 찾는다.

그저 위험하기만 하면 치명적인 유혹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특별한 매력도 있어야 한다. 도대체 목숨 걸고 먹는다는 옻순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지금 막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옻순을 맛보러 옻 산업특구 충북 옥천으로 떠났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옻 오를까 항히스타민제 먹어둬

옻순

옻순은 딱 지금이 제철이다. 보통 5월 초에 싹을 틔운다. 만화 『식객』을 보면 옻순은 1년에 3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나온다. 실제로 옻순은 싹을 틔우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 옻순은 자랄수록 독성도 강해져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옥천역 앞에서 박기영(52)씨를 만났다. 옥천을 옻 특화단지로 만든 주인공이다. 박씨의 권유로 옻이 올라도 가려움을 덜 느끼게 한다는 항히스타민제를 사 먹었다. 취재를 위해 약을 먼저 사 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씨와 함께 고당리로 향했다. 옥천군에서도 집중적으로 옻순을 재배하는 마을이다. 고당리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산비탈이 이어졌고 강물이 마을을 끼고 돌았다. 박씨는 “예부터 옻으로 유명한 곳은 강과 비탈이 있다”고 알려줬다. 옻나무는 공기 중 습도는 높으면서 땅의 습도는 낮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옻으로 유명한 평안북도의 태천, 경남 함양군의 마천면, 그리고 여기 옥천까지 모두 이름에 천(川)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옻을 재배하는 또 다른 고장인 강원도 원주 역시 홍천과 인접해 있다.

 “아버지가 1975년 대구에서 옻닭집을 했어요. 고향이 북한이라 태천 등지에서 옻 요리를 많이 접했거든요. 당시 장정일이나 류시화 같은 문인들이 우리집 단골이었어요. 그때 방송작가 일로 전국을 돌아다니다 여기 고당리에 250년 된 옻나무와 옻샘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옻나무 아래 샘이 있다는 건 옻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마을 평균 연령이 65세이어서 옻순이 나와도 수확을 안 하고 버리고 있었어요. 너무 아까웠어요. 결국 2005년 초 여기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어요. 정착하자마자 옻 재배를 활성화했고, 그해 12월 옻 특화단지로 인정받았어요. 2008년부턴 옻 축제도 열고 있어요.”

두릅과 비슷해 색깔·가시로 구분

옥천군 고당리엔 옻샘과 함께 250년 된 옻나무가 있다. 주위로 보이는 장독대 속엔 박기영씨가 담근 옻된장이 들어 있다.

박씨의 설명을 들으며 박씨 집 뒤에 있는 산을 올랐다. 옻나무 가지마다 주홍색 새싹이 3㎝ 정도 자라 있었다. 옻순은 처음엔 붉은빛을 띠다가 자랄수록 초록색을 띤다. 옻나무 옆엔 사람들이 옻순과 가장 혼동한다는 두릅나무도 있었다. 모양은 거의 똑같았다. 다만 두릅은 처음부터 초록색이라는 것, 옻나무엔 가시가 없지만 두릅나무엔 가시가 있다는 것이 달랐다.

 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한적했다. 고당리엔 26가구가 전부고,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다. 그러나 이곳엔 4만5000그루의 옻나무가 있다. 옥천군 전체 옻나무의 10%가 넘는 양을 고당리 노인들이 키우는 것이다. 지난해 옻순 축제가 열렸을 땐 전국에서 2000명이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와 이 한적한 산골을 들었다 놓은 적이 있었다. 옻순 자체는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짧아 큰 소득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옻피와 같은 옻나무 부산물을 통해 고당리에서만 5가구가 연 10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옻순 요리를 맛보려고 박씨의 집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옻순을 데치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고 주의를 줬다. 데칠 때 나오는 김 때문이었다. 박씨는 “옻순엔 우르시올이라는 화학 성분이 있는데 휘발성이 강해 데치면 증발한다”며 “그 김을 얼굴에 쐬면 열 명 중 예닐곱 명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옻순을 데치는 건 우르시올을 날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단 매니어일수록 데치지 않고 날 것으로 먹는다. 고유의 맛이 생생히 전해지기 때문이란다. 요리를 기다리며 부엌 바닥에 앉아있는데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들기름은 해독 작용을 해 옻순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다.

위쪽부터 가죽나무순·옻순·두릅순. 사람들이 옻순과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게 바로 이 두 가지다.

옻순 요리는 간단했다. 옻순을 살짝 데쳐 들기름과 초장에 버무려 나왔다. 조심스럽게 한입 먹어봤다. 굉장히 고소했다. 첫 맛은 약간 쌉쌀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왔다. 생각만큼 강렬한 맛은 아니었지만 중독성이 있었다. 그런데 먹은 지 5분쯤 지나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혹시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묻자 박씨는 “옻순이 몸을 따뜻하게 해줘 그런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이어 그는 옻순을 넣어둔 투명 상자를 보여줬다. 상자 안의 옻순은 이미 조금 짓물러 있었다.

 “이게 오늘 아침에 딴 겁니다. 열이 많아 서로 열을 이기지 못해 짓무른 거죠. 해녀도 옻순을 즐겨먹습니다. 해녀는 하루 종일 찬 물속에 있어 몸이 차잖아요. 옥천에서 제주도까지 옻순을 팔러 갈 때도 있어요.”

 옻순은 열이 많은 만큼 운반도 어렵다. 그래서 옻순은 산지에 와서 먹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산지에 와도 옻순 전문식당이 있는 건 아니다. 옻순 요리를 파는 건 현재 식품법상 금지돼 있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옻순 산지에서 열리는 옻 축제를 공략하는 것이다. 옥천에서도 해마다 5월 중순 옻 축제가 열린다. 축제장에서는 옻순을 파는 부스와 옻순을 요리해 주는 부스가 따로 있다. 처음부터 옻순 요리를 파는 것은 위법이지만, 옻순 자체를 파는 것이나 손님이 사온 옻순을 요리해 주는 것은 식품법에 걸리지 않는다. 그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다.

 박씨는 “일주일 동안 돼지고기는 절대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열이 많은 옻이 열이 많은 돼지고기와 몸 속에서 만나면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이틀쯤 지나자 몸이 조금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가렵다고 긁으면 심해진다”는 박씨의 충고를 믿고 하루를 꾹 참았더니 멀쩡해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옻순의 그 고소한 맛이 생각난다.

● 옻순 주문하려면 현재 국내에서 단체로 옻순을 재배하는 곳은 크게 세 지역으로 충북 옥천과 강원도 원주, 경남 함양이 있다. 규모는 원주가 가장 큰데 옻나무 개수로 치면 200만 그루 정도다. 옥천은 45만 그루, 함양은 7만 그루 정도다. 옻나무 한 그루에 옻순 150~200g이 나온다. 일단 싹을 틔우면 하루에 1~2㎝씩 자란다. 일주일 안에 따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옻순이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돼 버리기도 한다. 주문은 전화로 할 수 있다. 원주옻영농조합(033-732-5726)은 지난해 기준 1㎏에 2만원, 옥천옻작목반(043-733-0039)은 1만3000원, 함양옻작목반(055-962-5403)은 80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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