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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열병앓는 '불량품 로봇'-〈바이센테니얼 맨〉

중앙일보

입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우주 오딧세이〉 (68)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이 인간을 재앙으로 몰고 간 이후 많은 SF영화들은 '기술공포증(테크노포비아)'을 강하게 드러내왔다.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등에서 인조인간(앤드로이드)들은 겉으론 '인간에 봉사한다'는 존재 목적에 충실한 듯하지만 속 뜻은 자기네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기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실적으로 기계로 만든 인간이 탄생할 가능성은 가까운 장래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인조인간이나 로봇을 다룬 이야기들이 유행하는 것은 그(것)들이 현대인들의 존재 조건을 은유적으로 다루기에 유용한 도구이기때문일 것이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2백년(을 사는) 인간' 이라는 제목에서부터 SF적 요소가 담긴 영화라는 걸 읽을 수 있다.

배경은 2005년 미국 뉴저지. 리처드(샘 닐)는 가족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선물을 큰 맘먹고 구입한다. 바로 집안 일을 도맡고 두 딸과도 놀아줄 로봇이다. 앤드로이드를 줄여 앤드루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이 로봇은 로봇으로 치자면 불량품이다. 조립 과정의 실수로 호기심과 창의력 그리고 초보적인 감정까지 갖게 된 것이다. 제조회사에서는 연구용으로 분해하기 위해 반환을 요구하지만 리처드는 앤드루를 친자식처럼 대하면서 반환을 거부한다.

한데 앤드루에게 여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있었으니. 리처드의 둘째 딸(임배드 데이비츠)을 좋아하게 된 것.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상심한 앤드루는 자신을 이해해 줄, 자신과 닮은 '불량 로봇'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로봇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엔지니어를 만나자 앤드루는 기꺼이 수술대에 오른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여장(女裝)으로 우리를 웃겼던 로빈 윌리엄스. 그가 이번엔 금속성의 차가운 은빛 로봇 복장을 한 채, 인간이 되고자 열망하는 처연한 눈빛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나홀로 집에1, 2〉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는 전작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로 영화를 끌고 갔다.

원작은 SF소설을 다작(多作)한 러시아계 미국인 아이작 아시모프. 그가 고안한 '로봇의 3원칙'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이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이 영화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이 되기를 동경하는 한 로봇을 통해 자유와 자기 정체성과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영화다. '앤드루'의 내적 갈등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들의 현재를 성찰하게 된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 류의 암울한 느와르풍이거나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는 아니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재탄생하는 앤드루의 모습처럼 밝고 따뜻한 영화다.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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