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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비타민하우스 대표 >> 직원들에게 BMW 사주고 저는 에쿠스 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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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2001년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약국 약사들은 바빠졌다. 환자가 들고 온 처방전에 따라 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약사는 조제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반면에 손님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당시 광주광역시에서 건강식품업체를 운영하던 김상국(46) 대표는 이를 보고 무릎을 쳤다.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약국에 숍인숍(shop in shop)을 만들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곧바로 약국들과 계약을 했다. 영양사가 비타민을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을 상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무료하게 약사를 기다리던 환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광주에 1호점을 낸 지 한 달 만에 1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자신감이 생겼다. 직원 한 명과 서울에 올라와 39㎡짜리 오피스텔에 살며 약국 영업에 나섰다. 4년 만에 제품을 납품하는 약국이 1600여 개로 불었다. 영양사가 건강상태에 적합한 비타민 제품을 추천해 주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b>고졸 직원 5명과 사업 시작
현재 숍인숍은 전국에 4500개 정도다. 처음엔 약국 영업만 했으나 차츰 병원, 백화점, 할인매장, 홈쇼핑까지 확대했다. 판매 루트를 다각화한 것이다. 비타민하우스의 지난해 매출은 1300억원에 달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 하나로 11년 만에 건실한 기업을 일군 것이다. “창업한 회사가 10년 후에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1% 정도밖에 안 돼요. 제가 생존자입니다.”

비타민하우스 본사는 광주에 있다. 김 대표는 주로 서울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한다. 서울사무소 직원은 43명이다. 이들의 세끼 식비는 모두 회사에서 댄다.

직원들은 언제라도 회사 근처 지정 식당에서 김 대표 이름을 대고 술을 마셔도 된다. 회사에서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가는 한 달 식비가 1000만원이 넘는다.

김 대표는 회사 근처 사옥에서 일주일에 4일 이상 먹고 잔다. 그는 누구보다 직원들과의 식사, 술자리를 중시한다. ‘대표와 직원은 일심동체’라는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생활 태도다. 어렵게 자라 자수성가한 탓도 있다. 그는 1995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건강식품사업을 시작했다. 고졸 출신 직원 5명과 함께였다. 이들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불량한 젊은이였다. 어떤 직원은 학교에 가지 않고 농땡이치는 게 다반사였다. 어떤 이는 진학을 못해 휘발유 배달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들을 편견 없이 채용했다. 학벌 좋고 똑똑한 직원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면 일은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해서다.

“초창기 멤버 5명 중에서 2명이 총괄본부장, 관리본부장을 맡고 있어요. 작년에 그 직원들한테 BMW, 인피니티 승용차를 사줬어요. 저는 에쿠스 타는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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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일할 당시의 모습.

올해 매출 2500억원 기대
등짐 지고 전국을 돌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김 대표는 2008년부터 모든 결재권을 총괄본부장에게 넘기고, 1년에 딱 두 번만 결재한다. 월급 인상과 진급 때다. 주변 사람들은 우려했지만 최근 3년 동안 매출액이 매년 40%씩 증가했다. 김 대표와 직원들의 신뢰감이 원동력이었다.

“고등학교, 전문대만 졸업해도 능력이 있으면 우리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자식들한테 회사 물려줄 생각이 없거든요.” 그는 직원들에게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신에게 영업을 배워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회사가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배움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 대표는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었다. 대상 식품영업부에서 7년간 미원, 고추장 등을 팔았다. 사물놀이가 취미라 백화점 앞에서 분장하고 꽹과리와 장구를 치면서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은 소주 한 병을 마시고도 쉽게 못하는데, 그는 거리낌없이 나섰다. 그만큼 판매에 물불을 안 가린 것이다.

길에서 꽹과리 치는 영업맨
자기소개 오래 하기로도 유명하다. 동창회, CEO 모임에서 남들이 30초면 끝내는 자기소개를 15분 이상씩 한다. 자라온 환경, 다니는 회사, 판매하고 있는 제품까지 설명해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도록 한다.

“모임엔 사람이 많다는 게 기회였죠. 일일이 찾아다니려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데요. 자기소개를 오래 하면 저를 기억하고 비타민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잖아요.” 전남 완도 출신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자란 그는 안 해본 게 없다. 지하철 신문팔이부터 홍합 장사까지 학비를 벌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주유소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하지만 매년 장학금을 받았고, ROTC 중위로 전역했다. 그는 “당시 학군단 26기 3600명 중에서 내가 가장 가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성공비결로 ‘헝그리 정신’을 꼽았다. “어린 시절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낙담도 했어요. 상놈이 양반으로 바뀌는 게 가능할까? 반신반의하면서 뛰었죠.”

비타민하우스는 3년 전까지도 80%의 제품을 수입해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100% 자체 생산하고 있다. 생산·유통·판매 일괄공정을 이룬 것이다. 지난해엔 전남 담양에 8250㎡ 규모의 공장도 완공했다.

그의 고집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제약업계의 관행이던 후결제를 국내 최초로 선결제 납품했다. 콧대 높은 약사들이 처음엔 ‘그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 저는 옆 약국으로 갑니다’ 라고 반협박을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자본금이 없어 현금을 바로 회수하지 못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 택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약국과 병원 유통채널을 뚫고 나니 홈쇼핑, 백화점 등에 진출하기가 쉬워졌다. 올해 3월 홈쇼핑 방송에서는 1시간 만에 유기농 제품 ‘멀티비타민 웰’이 6억 3000만원어치나 팔렸다. 해외 진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필리핀에 합작 법인을 설립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 입점할 예정이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제품을 팔고 있다.

헝그리 정신에서 나온 아이디어
“원래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보고 달려가요. 사업이 안착할 때까지 숙소에서 직원들과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만 했어요. 직원 가족들까지 합쳐 1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편히 쉴 수가 없더라고요.”

김 대표가 챙기는 가족은 인도네시아에도 있다. 17년 전 대상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5개월간 함께 일했던 현지인 직원들이다. 아직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화가 걸려온다. 당시 그는 직원들에게 장구와 꽹과리 치는 법을 가르치고 새벽에 재래시장에서 함께 미원을 홍보했다. 그 결과 한 달에 19t씩 팔리던 게 49t으로 늘었다. 그때 직원들과 함께 놀러 다니면서 찍은 사진이 든 상자는 그의 보물 1호다.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기부 영수증의 소득공제 한도가 초과됐을 정도다. 국내는 물론 말레이시아 대학 장학금 후원, 동티모르에 비타민 2만 병 기증 등 해외 기부도 활발하다.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이 쌀, 김치 가져다준 것 생각하면 아직도 고마워요. 돈을 버니깐 나도 남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직원들 보너스를 매달 100%씩 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10년 안에 비타민하우스가 대기업이 되겠죠. 기부도 더 많이 할 수 있고요.”

유현정 기자 hjy2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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