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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유래 줄기세포로 질병 원인 규명과 신약 개발 앞당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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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10면

시간을 자유자재로 돌려 미래나 과거로 돌아간다는 할리우드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가 생각난다. 이런 꿈이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줄기세포는 어린 원시세포다. 줄기세포에서 원하는 체세포를 얻으려면 거기에 자극을 줘야 한다. 그 후 이 세포가 분화돼 병든 부위 조직의 세포를 대체하게 된다. 젊은 미분화 세포인 줄기세포가 성숙한 세포인 체세포로 변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다. 하지만 성숙한 세포인 체세포가 미분화 원시 줄기세포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과정이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교수팀이 개발한 역분화 기술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이런 상식을 깨뜨렸다. 그는 일반적 생명현상에 반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2006년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또 바이러스를 이용해 이 유전자들을 성숙한 체세포에 넣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역분화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 뒤 야마나카 교수는 매년 진일보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도 그가 주도하는 역분화 연구에 연간 600억원 넘는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난자와 배아를 사용하지 않고 특정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손쉽게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환자의 체세포에서 나온 것이어서 면역거부반응 없이 세포 치료를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어떤 질병의 동물 모델 대신 인간의 질병 세포를 직접 연구할 수 있어 질병의 발병 원인 규명과 신약 개발을 앞당기게 도와줄 것이다.

1992년에 개봉한 영화 ‘로렌조 오일(Lorenzo’s Oil)’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의 실제 인물인 로렌조는 1984년 다섯 살의 나이에 부신백질이영양증(ALD)이라는 치명적인 유전병 진단을 받았다. 부모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친다. 천신만고 끝에 ‘로렌조 오일’이라는 이름의 식물성 기름 혼합물을 개발한다. 이 질병은 염색체에 있는 하나의 유전자가 변형돼 뇌에 지방산이 쌓이고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생기는 병이다. 아직까지도 획기적인 치료법이 없다. 하지만 최근 역분화 유도기술이 발달하면서, 환자의 체세포로 특정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병의 원인과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런 혁신적인 기술 개발 덕분에 해마다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 때 사용되는 바이러스와 외래 유전자가 과연 안전하냐 하는 점이다. 물론 단백질이나 화합물을 이용한 역분화 기술이라는 대안이 있다. 문제는 아직 효율이 낮다는 것이다. 앞으로 5~10년 후엔 유전자와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화합물이나 단백질로 환자 유래 줄기세포를 안전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효율도 높아지고 지금보다 훨씬 손쉽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역분화 줄기세포 출현은 말 그대로 환자의 몸에서 손쉽게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10년 후면 베일에 싸여 있던 대부분의 유전적 난치병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약 개발도 급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또한 유전병의 원인인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 환자에게 면역적으로 적합한 세포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분화 기술의 영향으로 10년 후에는 ‘직접 분화(direct conversion)’ 기술도 발전할 것이다. 이는 다른 종류의 체세포에서 제3의 원하는 세포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피부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만들고, 줄기세포에서 다시 원하는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부세포에서 직접 신경세포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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