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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땅콩집’에 줄 선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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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땅콩집’이 등장하면서 단독주택은 비싸고 춥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주택 유형의 다양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사진은 이현욱 소장이 용인시 동백지구에 지은 땅콩집. 226㎡의 토지를 구입하고 두 집을 나란히 짓는 데 총 7억3350만원이 들었다. 한 집당 3억6675만원인 집이다. [마티 제공]


북미식 목조주택 ‘땅콩집’이 화제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땅콩집은 주택 1필지에 같은 건물을 붙여 2가구가 살 수 있도록 지은 소규모 주택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듀플렉스(Duplex)’라 불린다. 재료와 설계가 규격화돼 있고, 조립식으로 시공하기 때문에 돈이 적게 들고 공사기간이 짧은 게 특징이다.

건축가 이현욱

 땅콩집은 건축가 이현욱(광장건축 공동대표)씨가 집 지은 과정을 소개한 『두 남자의 집짓기』(이현욱·구본준 지음, 마티)가 올 3월 초 출판되면서 붐을 타기 시작했다. 책에 소개된 집과 비슷한 ‘내 집’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 문화·건축계에서 특정 형태의 주택이 이처럼 집중 조명을 받기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씨는 책에서 경기도 용인시 동백지구에 158㎡(다락방 포함)의 집을 한 달간 짓는 데 3억 6675만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3월 23일자 26면>

 ◆인터넷 카페 열기=땅콩집에 대한 일반인·네티즌의 반응이 뜨겁다.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cafe.naver.com/duplexhome) 회원 수가 책이 출간되며 1만7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 전에는 전 1500여 명 수준이었다. 책 출간 두 달 만에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일종의 문화 트렌드로 떠올랐다.

 실제 설계 의뢰도 밀려들고 있다. 이현욱 씨는 “아이를 마당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어 지었는데 현재 계약한 것만 38채에 이른다”며 “일반인의 수요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했다.

땅콩집의 내부 계단 모습. 어린 아이들을 고려해난간 대신 벽체로 마감했다.

 땅콩집도 형태는 다양하다. 건립비 7000만원짜리 초소형 규모에서부터 자매 두 가족이 함께 짓는 집까지 ‘주문자 맞춤형’이다. 경기도 화성 동탄지구에 38호의 집을 타운 하우스처럼 함께 짓는 ‘땅콩밭’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 38명의 입주자를 모집한 동탄 프로젝트에는 180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놓은 사람이 12명이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도 18호가 들어설 예정이다. 용인시 흥덕지구에는 상가와 임대용 주거 시설을 함께 갖춘 주택(일명 ‘완두콩’)도 진행되고 있다. 이현욱씨는 “광고를 낸 적도 없고, 설계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왜 땅콩집인가=땅콩집은 일단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은 편이다. 이씨는 “땅값을 포함해 3억~4억원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 내 집을 희망해온 30~40대 층을 파고든 것 같다”고 풀이했다.

 ‘집=부동산=투자’라는 고정관념 파괴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땅콩집은 국내에서는 아직 실험단계로, 투자가치는 미지수인 상태다. 아파트 선호라는 경제적 가치에서 벗어나 ‘내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집’ 같은 개인적 가치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건축가 유걸(아이아크 대표)씨는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내 집을 내가 필요한대로 짓고 살기보다는 획일화된 환경 안에서 편안해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땅콩집은 사람들의 주거·문화 욕구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려한 전원주택’과 거리가 멀다는 점도 흥미롭다. 형편에 맞는 실용적인 집에 대한 현대인의 갈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씨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재료로 집을 짓는 ‘주택의 공업화’가 20년 전부터 진행돼온 일본에 비해 우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선 셈”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도면과 시공 기술, 원활한 건축 재료 등 많은 노하우가 축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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