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채 공간에 두 채 지은 ‘땅콩집’ 마당까지 만들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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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건축가 이현욱씨가 직접 설계해 지난해 9월부터 살고 있는 용인시 동백지구의 땅콩집. 친구와 함께 땅을 사고 나란히 지었다. 북미식 목조주택으로 앞쪽으로는 앞마당이 있다.

단독주택은 아무나 못 짓는 비싼 집일까. 어릴 때 살던 집처럼 겨울에 춥고 유지비도 많이 들지 않을까. 한 건축가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경기도 용인시 동백지구 한 주택 필지에 나란히 지은 두 채의 주택, 이른바 ‘땅콩집’으로 주목 받고 있는 건축가 이현욱(42·광장건축 공동대표·사진)씨다. 3억6675만원으로 앞마당은 물론 2층 규모에 다락방까지 갖춘 집(158㎡·48평)을 지었다.

친구와 함께 3억6000만원짜리 택지(226㎡·68평)를 구입해, 두 채의 집을 짓는데 들인 돈은 공사비(3억 2000만원), 설계비와 각종 세금을 합쳐 모두 7억 3350만원. 한 집 당 4억이 채 안 들었다는 얘기다. 공사기간은 단 한 달. 이씨는 집만 아니라 책도 지었다. 땅 매입부터 입주까지의 과정을 담은 『두 남자의 집 짓기』(이현욱·구본준 지음, 마티)다. 출간 한 달 만에 1만 부 가까이 나갔다. 주택 관련 서적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새로운 주거 유형에 대한 갈증이 읽힌다. 서울 동숭동 광장건축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땅콩집 내부. 위쪽부터 1층의 부엌과 거실, 2층의 아이방, 3층의 다락방. 단열을 위해 창은 작게 냈다. 관련 정보는 인터넷 카페(cafe.naver.com/duplexhome)에서 볼 수 있다.

-3억6000만원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게 가능한가.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웃음).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최소 7~8억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선입견이다. 이 예산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건축가나 해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다. 3억원은 평범한 직장인이 꿈꿀 수 있는 현실적인 규모다. 돈이 없으면 둘이서 함께 땅을 사고, 그래도 모자라면 작게 지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단독주택에 대한 의지다.”

-집을 어떻게 한 달 만에 짓나.

 “목조주택이기 때문이다. 목조주택이라고 모두 통나무집은 아니다. 나무 뼈대로 짓는 집으로, 미국·캐나다의 단독주택 형식이다. 재료와 설계가 모두 규격화돼 있고, 공장에서 재료를 만들어 바로 조립하기 때문에 공사기간이 짧다.”

-겨울에 춥지 않나. 난방비도 궁금하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단열이다. 재료나 방수처리는 물론 에너지 효율을 위해 창문을 작게 냈다. 1층(거실과 주방)과 2층(침실)이 각각 52.8㎡(16평) 규모로, 낮에는 1층만, 밤에는 2층만 난방을 했는데 네 식구가 추운 줄 모르고 겨울을 났다. 난방비는 32평 아파트 정도 들었다.“

-땅콩집이 직접 짓고 살아본 세 번째 단독주택인데.

 “건축가로서 다양한 주택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집 실험’을 하며 실패도 많이 했다. 첫 번째 집은 17평 컨테이너 크기의 철제구조였는데 단열 면에서 영 아니었다. 두 번째는 콘크리트 집이었는데 역시 콘크리트가 문제였다. 겨울에 건조하고, 피부에도 안 좋았다. 좀더 따뜻하고, 친환경적인 소재에 눈길을 돌리면서 목조주택에 도전했다.”

-싼 택지를 구하려면 서울에서 집 짓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교육과 통근도 문제다.

 “제 경우는 ‘지금 당장’ 아이를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평면적인 아파트보다는 다락방이 있고, 마당이 있는 집을 더 좋아한다. 출퇴근 왕복에 3시간이 걸리지만 아직 젊기 때문에 괜찮다.”

-전하려는 메시지는.

 “아파트는 뛰어난 주거방식이지만 최선책은 아니다. 인구밀도 때문에 국민이 모두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밀도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다양하다. 더 큰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집도 다양해져야 한다.”

 이씨는 주로 극장 설계를 해왔다. 1년에 1~2채의 주택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최근 땅콩집이 알려지면서 의뢰가 밀려들고 있다. 현재 계약된 것만 20채에 이른다. 건축주의 대부분이 30~40대라고 했다.

 “7억이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사람들이 단독주택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게 됐죠. 자기 땅에 자기 형편대로 짓는 게 집인데 말이죠.”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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