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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배움 평생 남아 … 역사교육 일찍부터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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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역사학자 이이화(74·사진)의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 저술에 한 획을 그었다. 22권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민중사·생활사도 복원한 작업이었다. 그걸 만화로 풀어낸 『만화 한국사』는 100만부가 팔렸다. 고교생 이상, 성인 눈높이에 맞췄던 만화였다.

이번엔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낮춰 만든 개정판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 이야기』(삼성출판사)가 총 9권으로 완간됐다. 만화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역사 대중화에 힘써온 그의 땀방울이 담겨있다.

 -‘이이화’로 검색되는 어린이책이 많다.

 “역사 대중화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 그때 외운 건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 어설픈 지식인이었던 형이 어릴 때 잘못 알려준 걸 지금도 외우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란다. 같은 임금인데 왜 어떤 왕은 ‘조’자를 쓰고 어떤 왕은 ‘종’자를 붙이냐고 물었더니 형이 ‘사람 죽이고 잘못한 임금은 조고, 종은 착한 임금’이라고 하는 거다. 사실은 ‘조’가 더 근사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린이책 만들 때 얼마나 관여하나.

 “절대 이름만 빌려주진 않는다. 감수건 추천이건 반드시 검토해보고 마음에 들어야 맡는다. 만화 한국사의 경우 작업하는 과정에서 콘티 작가와 그림 작가가 나 때문에 굉장히 고통을 겪었다. 내용과 문장을 뜯어고치는 건 물론이고, 채색을 끝낸 그림을 고치는 경우도 있었다. 상식에 맞지 않거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실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화계에 역사 전공자가 적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

 -학습만화가 쏟아지고 있다.

 “내용은 없고 붕 띄우는 데 열중하는 만화가 인기 있더라. 어린이물이고 역사물인데 성인만화의 수법을 써 먹으면 안 되는 거다. 내 책에도 소녀가 등장하는 데 너무 예쁘길래, 만화가에게 못생긴 애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했다. 민주주의·양성평등을 암암리에 보여줘야 한다. 난 아이들 책엔 비과학적이고 신비적인 이야기는 안 넣는다.”

 -국사과목이 고교 필수가 됐다.

 “중국·일본은 전체 교과 시간의 10%, 독일은 15%가 국사다. 우리가 국사 교육에 소홀한 와중에 일본의 근·현대사 왜곡 같은 큰 문제가 생긴 거다. 큰 맥락에서 볼 때 ‘국사 필수’화는 국사 교육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고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식 과거사 청산이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주장해왔는데.

 “넬슨 만델라가 세계적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백인들이 사과하되, 복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론 공존의 사회로 가야 한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라는 이름은 그런 바탕에서 잘 지은 거라 본다. 우리 근현대사가 복잡성을 안고 있지만, 과거사도 어느 정도 정리는 됐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진전해왔다. 이제 이 나라에선 쿠데타가 안 일어날 것이고 장기집권도 국민들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방향은 절대 못 거스른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막걸리·온돌·왕릉·궁궐 등 한국 문화를 역사와 연결해 외국인에게 쉽게 소개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건 껴묻거리(부장품)로 금붙이가 없었고 규격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검소·절약 철학이 담겨있다. 국력을 들이지 않도록 왕릉조차 크게 짓지 못하게 제한한 것인데, 근래에 호화 청사 짓고 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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