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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상업·예술 넘나드는 세계적 사진가 유르겐 텔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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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이자 패션 아이콘인 빅토리아 베컴. 한 사진 속에서 쇼핑백에 거꾸로 처박혀 두 다리만 보인다. 영국의 국민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또 어떤가. 촬영 당시 68세에 전라로 사진 포즈를 취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를 감독한 소피아 코폴라는 풀장에서 사진작가의 벌린 두 다리 사이로 고혹적 미소를 날린다. 만나기도 힘든 명사들을 불러놓고 도발적인 사진을 찍은 이 괴짜는 바로 독일의 패션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47)다. 독창적 스타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그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7월 말까지 첫 내한 전시회를 연다. 지난 13일 미술관 정원에서 유르겐 텔러를 만났다.

글=이네스 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유르겐 텔러의 작품 속에선 유명 인사와 작가 사이의 은밀한 관계가 우연처럼 ‘제3의 눈’으로 노출된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이미지 속에 특급 스타들을 어떻게 작가의 피사체로 만들었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작품이 많다.

  “내 작품이 ‘쇼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삶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삶이란 게 원래 ‘쇼킹’하지 않나. 내 삶에 충실하며 그 추한 면,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는 게 두렵지 않을 뿐이다.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겪은 슬픔도 작업에 담는 것처럼, 난 그저 예쁜 꽃이나 찍어 기록하는 작가는 아니다.”

  텔러의 ‘날것’ 같은 사진들은 파격적 패션인지 포르노인지, 아름다움인지 추악함인지, 상업인지 예술인지 경계선을 넘나들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 왔다. 기술적으론 보정을 당연시하는 인공적인 사진이 범람하는 패션계에서 콘탁스 G2 카메라에 플래시를 터뜨려 실수한 것 같은 ‘비연출’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를 통해 지난 20여 년간 보그와 더 페이스 같은 패션지를 통해 마크 제이콥스 및 셀린느 등의 패션 광고 사진을 찍었다.

쇼핑백 속의 빅토리아 베컴

공원의 소녀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텔러의 다리

침대 위의 문어


●상업적 작품을 할 때와 작가정신 짙은 사진을 찍을 때의 차이는 뭔가.

  “큰 차이가 있다. 상업적인 걸 찍을 땐 업주의 주문을 신중히 다룬다. 패션 광고는 단순한 상품 선전이 아니다. ‘당신도 스스로의 개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패션업계는 데이비드 베컴처럼 흔히 접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해줘서 좋다. 반면 개인적 작업은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시작한다. 예술가로서 영감이란 어디서나 얻는다. 예컨대 서울에서 시각장애인 안마를 받고 그를 사진에 담고 싶어졌다.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의 교류가 중요하다. 나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를 잘 하기에 초상화 전문 사진작가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번 전시엔 어떤 작품들을 주로 내세웠나.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내가 만족하면 관객도 만족할 거다. 나아가 관객들이 무엇인가 얻어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사진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관객이 직접 경험하기를 원한다. 전시장 벽을 채운 102개의 질문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14년을 함께한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광고 비주얼은 내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TV 화면으로 일본의 가족 여행 사진과 쿠바 여행 사진도 보여준다. 내가 새로운 나라를 접했을 때 경험한 낭만적인 느낌들이다.”

  이날 텔러는 삐죽삐죽 세운 짧은 금발머리와 각진 ‘마틴 마르지엘라’ 재킷을 제외하면, 어딜 봐도 둥글둥글했다. 둥글게 나온 배, 둥근 얼굴, 그리고 둥근 눈동자는 청정한 하늘보다 더 새파랬다. ‘6파운드(약 1만원) 주고 샀다’는 바지 밑 알록달록한 양말과 운동화를 보면 성격도 둥글지 않나 싶다. 그는 서울 체류 뒤 부인과 아들이 기다리는 런던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전 여자 친구인 스타일리스트와의 사이에 딸도 있다. 그는 “모두 5분 거리에 산다”며 웃었다. 자연스럽게 사적인 분위기로 얘기가 흘렀다.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독일 뮌헨에서 멀지 않은 엘랑겐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가족이 바이올린에 현을 얹는 ‘브리지’ 제조업에 종사했다. 나도 바이올린 활을 만드는 조수일을 1년 하다가, 나무 먼지 알레르기 때문에 중단했다. 의사가 공기를 바꿔 보라고 말해 봄방학 때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사촌 형에게 놀러 갔다. 형은 사진이 취미라서 해가 져도 사진 찍는 데만 몰두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 ‘카메라 좀 줘 봐’ 하면서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난생처음 자극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사진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가 18세였다.”

●당시 ‘뷰파인더’ 속 광경을 기억하나.

  “석양 속의 아름다운 경치, 나무들에 에워싸인 황금색 초원이었다.”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작업이 많다.

  “삶에는 과거와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22세 이후 런던에 정착했지만 난 매년 고향에 돌아간다. 거기서 작업을 해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고향이 작고 시시한 곳이라도 자랑스럽다. 나의 현재와 과거·미래 모두를 끌어안고 싶다. 내 작업 속엔 진실도 있고 판타지도 있는데, 그 경계를 뭉그러뜨려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든다.”

●그렇게 정겨운 고향을 두고 런던에 정착한 이유는 뭔가.

  “영어도 배우고 군대도 안 가려고 86년에 이민을 갔다. 누구한테서 지시받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도덕적인 품행을 엄격히 지키는 한,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인생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돈을 버나 고민하던 중, 음악가 사진 촬영 일을 맡았다. 그 뒤로 시너드 오코너 같은 가수의 사진을 찍었다.”

  현재 텔러는 뉴욕 ‘리먼 모핀(Lehmann Maupin) 갤러리’ 소속 작가다. 한국 작가 서도호와 이불도 이곳 소속이다. 리먼 모핀의 라켈 리먼 대표는 텔러에 대해 “인물의 개성을 잘 추출해 내는 초상화 작가이며, 다른 동시대 작가들처럼 건축·음악·패션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현상을 작품 속에 잘 표출해 낸다”고 호평했다.

●사진을 시작한 뒤 출발 때부터 쉽게 명성을 얻은 것 같다.

“오코너의 사진을 찍자마자 그녀의 노래 ‘낫싱 컴패어스 투 유(Nothing Compares To You)’가 빌보드 차트 1등에 올랐다. 나도 자동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내 생활은 비참했다. 일도 돈도 변변히 없던 내게 비가 오는 런던은 우울했다. 마침 미국 잡지사에서 ‘너바나’라는 밴드의 독일 투어 촬영을 요청 받았다. 당시엔 아무도 ‘너바나’를 알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밴드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에게 감동했고, 환상적인 독일 투어를 따라다녔다. 그때 록이며 뉴웨이브 같은 음악이 패션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나도 자연스레 패션계로 옮아갔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사진 경쟁력은 무엇인가.

  “늘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은 걸 추구했다. 뮌헨의 보수적인 학교에서 2년간 카메라 기술을 배웠다. 그 지식을 응용해서 뭘 하고 싶은지 터득했다. 어떤 것은 이용하고, 어떤 것은 버리면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 나갔다.”

●독일 사진 전통은 보수적 아닌가. 거기서 어찌 거친 스타일을 찾았나.

  “내 사진은 플래시를 터뜨려 피사체를 다 드러내기에 거칠고 날것 같아 보이지만, 반면 사람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내겐 ‘포커스’가 가장 분명한 직접적인 방식이다. 그게 익숙하고 좋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10년 늙어 보이게 찍었다’고 불평한 일화가 유명하다.

  “위페르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뒤 깊은 절망에 빠졌다. 런던에 돌아가기 직전 여배우 샬럿 램플링에게 저녁식사나 하자고 했다. 많은 대화를 나눈 뒤, 앞으로 절대 타인의 문제 따위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자화상을 찍기로 했다. 내가 못생겼다든지, 살쪘다든지 다 나만 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어떻게 내 사진 속에 나오는지 그 모습과 느낌을 알고 싶었다. 다시 순수해지고 싶었기에 말이다. 내가 옷을 벗고 사진을 찍는 데 의미가 생겼다.”

●독일 대표 신문 디 차이트(Die Zeit)에 칼럼도 쓴다고 들었다.

  “디 차이트에 일년 반 연재한 칼럼들 중 35점을 골라서 한 벽면을 채우는 전시도 하고 있다. 칼럼은 사진 한 컷과 글이 필요한데, 그동안은 매우 성공적이다. 자화자찬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다. 빈, 모스크바, 루마니아의 미술관에서 칼럼 전시를 했다.”

●사진작가에게 글이란 무엇인가.

  “처음 신문 칼럼을 의뢰받았을 땐 독어로 문장을 잘 쓸 수 있을까 겁이 났다. 몇 주 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 내 방식대로 써 내려간 글에도 만족한다. 내 개성을 살린 강조 포인트를 담았고, 순수성과 거침없는 솔직함, 딱딱한 냉정함을 그대로 살렸다.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이 아니지만 아주 재미있는 얘기들을 소개했다. 미국 전시 때 칼럼을 영어로 번역하는 난관에 부딪혔지만, 결과물은 마찬가지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 신문에도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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