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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절대로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아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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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호 05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의 느리고 불명확한 대응에 실망할 때마다, 한국에서 빅 히트한 CM송 “간 때문이야~”를 큰 소리로 불러주고 싶어진다. 이런 답답한 시기, 일본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만한 드라마가 나타났으니, 바로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TBS의 일요 드라마 ‘진(JIN-·仁)2’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드라마속 사카모토 료마에게 위안 얻는 일본인

2009년 겨울 시즌에 방영돼 화제가 됐던 ‘진(JIN-·仁)’의 후속편인 이 작품은, 첫 회 시청률 23.7%로 이번 시즌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 20%를 넘기는 드라마가 좀체 나오지 않는 침체기에 보기 드문 선전이라는 평이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몇 년간 방영된 일본 드라마 중 가장 탁월했다고 생각하는 전작 ‘진(JIN-·仁)’은 무라카미 모토카의 SF의료만화(국내 발행제목은 『타임슬립 닥터 JIN』)가 원작. 대학병원의 뇌 전문 외과의인 진(오사와 다카오·사진)이 에도 시대 말기로 타임슬립을 해 변변한 의료 기구나 약도 없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이야기다. 현대 의학지식을 활용해 페니실린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개복수술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진. 그를 통해 운명이란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는 그것을 바꿀 자격이 있는가 등을 묻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인기요인은 역시 일본인들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다. 주인공 진은 막부 말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만나, 일본을 새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돕는다. 사카모토 료마가 결국 암살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진은 1편에서 “일본의 미래를 위해 절대로 료마를 죽게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편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제작진도 “2편의 가장 큰 테마는 ‘역사의 수정력(修正力)’에 대한 것”이라며 “결국 주인공 진이 료마의 암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가 스토리의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석간 후지’ 인터넷판은 드라마 ‘진(JIN-·仁)’의 인기에 대해 “버라이어티를 봐도 맘껏 웃기 힘든 이런 때, 옛날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모습에서 힘을 얻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 외에 주목받고 있는 봄 시즌 드라마들도 대부분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하는 따뜻한 스토리다. 한국작가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를 원작으로 한 후지TV 드라마 ‘굿 라이프’는 가정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가 백혈병과 싸우는 아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이야기. 6화 이후에는 화제의 배우 정우성의 특별 출연도 예정돼 있다.

황망하고 팍팍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픽션은 얼마나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일본의 이번 시즌 드라마들은 그것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진(JIN-·仁)’ 1편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이런 말을 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여기서 태어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안 돼.” 두 시간으로 확대 편성된 2편의 첫 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수없이 반복됐다. “신은 절대로,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아요.”
misquick@gmail.com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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