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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김만덕으로 불리던 주민의 숨은 영웅 '이종화'…다시는 못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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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감동 화두이다. 그러나 북한에선 이 같은 선의를 베풀다간 자칫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공개 총살되는 경우도 있다.

17일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북한에선 '자선이 죽음으로 돌아온다'는 희한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서 자선은 식량난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자취를 감췄다.

공개 처형되는 북한 주민의 모습 [사진=차오시안]

99년 양강도에서 있었던 '이종화 공개처형'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국경 지역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밀수도 성행했다. 이렇게 되자 당국은 양강도 등 국경 지역에 비사회주의 검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당시 농사를 짓던 이종화씨는 굶주림에 남편과 자식을 잃고 ‘꽃제비'로 전전하던 이를 안타
깝게 여기고 집으로 데려와 농사를 함께 지었다. 이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제주의 거상으로 백성을 살리는데 모든 재산을 쓴 김만덕에 비견됐다.

그러나 당국은 이씨에게 "공화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현대판 지주'로 집에 머슴을 두었다"는 죄명을 씌워 공개 처형했다. 이씨를 시샘한 한 주민이 고발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씨가 데려온 이는 먼 친척이었고 많다는 재산도 사실 그의 부지런함에 따른 대가였다. 남 보다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일해 굶주리는 주민들과 수확물을 나눴다. 명절이면 마을사람들에게 과일을 선물하고 가난 때문에 결혼식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씨의 공개총살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이 사건 이후 김정일 체제에 대한 공포도 확산됐다. "남에게 베풀고 싶어도 처벌이 두려워 옆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을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라는 한탄
도 나오고 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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