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삶 통해 투영한 사회의 모습〈박하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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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일학년 챕터에 속해 있다.

겨울이었다. 나는 홍역을 앓고 있었다. 어둑한 저녁, 퇴근한 아버지가 방문을 여신다. 그리고 내 머리맡에 사탕봉지를 두고 나가신다. 박하사탕과 땅콩캬라멜이었다. 땅콩캬라멜을 더 맛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음식물을 저작해 온 세월로 둔해진 지금의 혀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리고 여린 혀에는 박하사탕이 너무 화했던 것이다.

〈박하사탕〉은 그 눈처럼 희며 꼭 다문 입술처럼 생긴 박하사탕을 어린 시절에의 향수와 함께 기억하는 세대에게 각별한 영화이다. 물론 〈박하사탕〉 에는 '어린 시절' 이 나오지 않는다.
그 어린이들이 막 성년이 된 1979년 가을이 '박하사탕' 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박하사탕〉 의 감독 이창동은 나와 같은 세대 사람이다. 같은 시절을 살아 왔고 같은 시절을 살아갈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소설가였다.

〈박하사탕〉을 보고 나니 그가 앞으로는 소설을 쓸 시간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말을 처음들었을 때 가졌던 착잡함과 엉뚱하다는느낌을 그는 첫 영화 〈초록 물고기〉로 불식시켜 주었었다. 그리고 〈박하사탕〉 이후로, 그가 영화감독으로 전향하길 잘했다고 말한다면 소설가 이창동이 섭섭해 할까?

솔직히 나는 이 영화를 허점을 찾아내려고 쌍심지를 돋우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허점이 안 보였다(관망해야 보이는 허점도 있을 테니까). 영상도 좋았고 화면 처리도 좋았고 대사는 구석 구석 빛났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특히 낯선 얼굴인 설경구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앞으로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공교롭게도 〈박하사탕〉을 본 즈음에 읽은 클레르 갈루아의 소설 '육체노동자' 에서 나는 〈박하사탕〉의 주제라고 할 만한 구절을 발견했다. 고대 로마의 해시계에 새겨져 있는 문구라고 한다.

"모든 시간은 상처를 입히고 마지막으로 죽인다" .

〈박하사탕〉은 '야유회' '사진기' '삶은 아름답다' '고백' '기도' '면회' '소풍' 의 일곱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챕터인 '야유회' 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지는 꽃잎이 호르르 나무로 되돌아가는 기차길을 따라 영화는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노련한 경찰이었던 과거, 한 조무래기 우범자를 혹독하게 다룬 끝에 동료의 소재지를 실토받고, 그는 겁먹고 분하여 우는 소년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묻는다.

"야,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어리둥절한 소년에게 그는 툭 뱉는다. "임마, 네 일기장 보니까 그렇게 써 있던데? '삶은 아름답다' 고" .

〈박하사탕〉은 1999년의 봄에 40대 초의 나이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채 생을 마감한 한 인간에 대한 탐사다.

그런데 개인의 모습을 빈 사회상이라고 할까, 이 탐사에서는 한 개인의 개별적인 삶새보다 이 사회의 모습이 더 뚜렷이 보인다. 타락하고 아름답지 못하고 점점 더 망가져가는. 내내 격정에 찬 이 아름답기도 한 영화에서 지난 세기를 총결산하며 이창동은 묻는다.

"야, 너 정말 삶이 이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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