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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뒤 패널끼리 멱살 잡고 싸워 경찰 부른 적도 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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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8면

요즘 TV와 라디오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방송 진행자가 있다. KBS-1TV ‘생방송 심야토론’ 진행을 맡고 있는 왕상한(48·사진) 서강대 법학과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편안한 마스크에 매끄러운 진행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왕 교수를 만나 10년 넘게 토론 진행자로서 보고 느낀 소회를 들어봤다. 또 일반인이 목격하기 힘든 시사토론의 막전 막후는 어떤지 알아봤다.

TV 시사토론 진행자 왕상한 교수가 말하는 ‘토론 막전막후’

-어떻게 방송토론 진행을 맡게 됐나.
“1999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서 민간 전문가를 채용할 때 통상전문관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한·미 투자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폐지 반대론자는 엄청 많은데 찬성론자는 찾기 힘들었다. 당시 나는 폐지에 찬성하는 기고를 일간지에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TV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불려나가게 됐다. 그러던 중 2000년 2월 EBS ‘난상토론’ 진행자가 바뀌게 되면서 갑작스레 제안이 왔다. 100분짜리 생방송이었는데 첫 방송이 끝났을 때 입술은 새파랗게 질리고, 마구 땀 흘리고, 자막이 올라가는 도중에 머리 쥐어짜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화면에 나가기도 했다.”

-그 다음에 어떤 프로그램을 맡았나.
“난상토론을 3년 반 정도 진행하다가 미국에 1년 다녀온 뒤 KBS 제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왕상한입니다’와 ‘생방송 토요일’ 등을 진행했다. 2006년부터는 KBS-1TV ‘TV, 책을 말하다’를 3년 가까이 진행했고 지난해부터 KBS ‘생방송 심야토론’ 진행을 맡고 있다. 어느 사이트엔 내 직업이 방송인으로 적혀 있는 곳도 있더라.”

-활동이 무척 다양한데 자신의 직업을 하나만 꼽으라면.
“물론 대학교수다. 전공이 통상법이라 시사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늘 현안이 되는 국제흐름과 사회이슈를 다뤄야만 하는 게 내 전공 분야다. 내가 방송을 계속하는 이유다.”

졸던 방청객, 뒤로 자빠져 119 실려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
“방송을 12년째 진행하다 보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한번은 생방송 토론 도중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방청석 맨 위에 앉아있던 사람이 졸다가 뒤로 자빠진 것이다. 머리가 깨지고 난리가 났다. 119 구급대도 출동하고. 생방송이라 표정 하나 변하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생방송 도중 패널로 나온 교수가 방청객으로 나온 대학생에게 막말을 거침없이 퍼붓기도 했고, 방송 끝나고 패널끼리 멱살 잡고 싸운 적도 있다. 그때 경찰까지 출동했으니 참 심각한 순간이었다. 한 패널은 토론이 끝난 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송국의 대형 유리창을 발로 걷어차 깨뜨리기도 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안타까울 때는 없었나.
“토론의 기본은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이다.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 다름에 대한 인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게 전무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뭐가 다른지 상대방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설득한 뒤 접점을 모색해가는 게 중요하다. 토론도 협상과 같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주고받기)가 중요하다. 내가 줄 게 뭔지, 상대방에게 받을 게 뭔지 정확히 알고 나와야 한다. 토론은 냉정해야 하는데 이성을 잃으면 결국 잃고 만다. 받을 것도 못 받으면서 주지 않아도 될 걸 주는 최악의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의 조명에, 카메라가 사방에 설치돼 있는 스튜디오 생방송을 하면서 냉정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대학총장도 손과 입술을 벌벌 떨 정도다.”

-진행자로서 힘든 점은.
“한쪽 패널이 미숙할 때는 토론이 기울게 된다. 그러면 진행자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제3의 패널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찌 보면 조커 같다고 할까. 영세중립국이지만 종종 유엔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특정한 입장을 가진 시청자들이 보기엔 편파적이고 공격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시사토론 진행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토론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얼마 전 KBS 라디오 토론에 나왔는데, 사실 안 지사에 대한 선입견은 별로 좋지 않았다. 비리·투옥 등 언론에 비친 모습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데 얘기를 시작하는데 뭔가 이유를 말하기 어렵지만 나도 모르게 끌리더라. ‘사람 참 괜찮네’ 싶었다. 진정성과 인간미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더라. 청취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토론이 끝난 뒤 트위터에 ‘좋은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바란다’고 썼더니 곧바로 고맙다는 답신이 왔다.”

-실망스러웠던 출연자는 없었나.
“최근 토론 프로그램에 여당 초선 의원이 나왔는데 시종 자기가 누구랑 굉장히 가깝다느니, 어느 계의 실세라느니 떠들어댔다. 또 다른 여당 초선 의원은 미리 준비된 질문을 던졌는데 ‘상당히 건방진 질문이네요’라고 되받아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준비를 거의 안 해 왔다가 추가 질문에 전혀 말을 못하고 쩔쩔매는 패널도 적지 않았다. 어느 단체 대표는 종이를 넘겨가며 써온 걸 줄줄 읽기만 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마이크를 잡으면 놓을 줄을 몰라서 내가 ‘대체 토론하러 온 거냐, 강의하러 온 거냐’라며 말을 자른 적도 있었다. 한 진보적 지식인은 경비행기를 모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가 녹화가 끝난 뒤 편집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결국 이 발언은 편집돼 방송되지 못했다. 물론 겸손한 국회의원과 전문가들이 훨씬 많다. 그런 분들은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반론을 펴기 때문에 나름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황당했던 경우도 많았을 텐데.
“한 지자체 단체장이 생방송 토론에 출연했는데 알고 보니 방송사 고위 간부에게 전화해서 토론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는 거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전화한 게 아니라 젊은 참모가 나이 많은 간부에게 전화해서 ‘나 누군데 이런 것 좀 하면 어떻겠소’ 이랬다고 한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담당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모두 황당해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토론이 성사됐는데, 도중에 패널 한 명이 좀 공격적인 질문을 하니까 그 단체장이 ‘질문하는 게 내 반대자들과 왜 그리 똑같으냐’며 정색하며 되받더라. 그 사람의 그릇 크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진행자로서 좀 더 보완해야겠다고 느낀 점은.
“나는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전달력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도 그들 수준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나름대로 두 가지 시도를 했다. 우선 이 나이에 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해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MC 과정을 이수했다. 또 발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혀 밑 수술을 2번이나 받았다. 혀를 더 길게 하려고…. 나도 참 독종이다. 아내가 아나운서인데 말도 안 하고 수술했더니 기겁을 하더라.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게 프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만약 혀 때문에 전달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 나는 또 자를 거다.”

-그렇게 바쁜데 연구는 언제 하나.
“잠을 하루에 3시간 잔다. 잠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나는 일에 미친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500번 넘게 선보다 마흔에 결혼
-결혼이 늦었는데.
“2002년 마흔 살에 결혼했다. 선은 무지 많이 봤다. 10년 넘게 매주마다 봤으니 500명은 족히 넘게 만난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본 적도 있다. 주변 권유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선보고 싶어서 나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웃음). 그런데 집사람은 선봐서 만난 게 아니었다. 2001년 9·11 사태 때 급히 생방송에 출연하게 됐는데 집사람이 그 프로의 MC를 맡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가 어떤 계기로 유학을 가게 됐나.
“조선일보에 입사하자마자 국제경제를 담당하게 되면서 통상문제를 집중 취재했다. 당시 쌀시장 개방 문제가 현안이었는데 통상법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영어를 꽤 잘 한다. 취재를 거듭하면서 통상법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
“내가 봐도 내가 방송 진행을 참 잘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비디오가 된다. 또 토론 진행자는 호감과 신뢰를 함께 줘야 하는데 나는 내가 그렇다고 감히 자신한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재미도 주고 찌르는 맛도 아는 게 시사토론 진행자의 기본 자질이다. 그런 점에서 나만한 진행자가 드물다고 본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진행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주 5일 생방송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며 여야 국회의원들을 꽤 많이 만났다. 웬만한 정치부 기자보다 내가 폭이 더 넓을 거다. 그러면서 국회라고 하는 곳에 대한, 소위 정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게 됐다. 인물을 알고 계보가 보이니까 재미가 붙더라. 저 국회의원이 왜 저 말을 하는가 짚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국회의원이 될 것 같다는 게 좀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계획은.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이게 평소 나의 모토다. 두 딸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애들이 유치원에 다니는데 내가 항상 데려다 준다. 사람 일을 누가 알겠나. 다만 입고 있는 옷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내 몸에 맞지 않을 때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가 돼 있다.”

-그 옷에 정치도 포함되나.
“정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집사람도 정치하면 이혼한다고 한다. 교수로서 논문 쓰고 사회활동을 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숙제다. 아, 빵가게 하나 여는 꿈도 갖고 있다. 빵 굽는 냄새를 너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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