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실수는 좋은 주식 빨리 파는 것”“겁 많은 투자자는 성공 못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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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22면

성장의 양보다 질을 들여다봐야
●강방천 회장=매일 아침 눈을 뜨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주식투자자다. 그럼 뭘 해야 하나. 훌륭한 기업을 찾아야 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만 보고 훌륭한 기업을 가려내기는 힘들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BM)’이 있어야 훌륭한 기업이다. PER이 높더라도 BM이 훌륭하다면 그 주식을 살 수 있어야 진짜 투자자다. 훌륭한 BM은 세 가지 미래 유망 산업에 걸쳐 있다. ‘중국의 햇볕이 비추는 곳에 몸을 눕혀라’ ‘탄소를 소비하지 않는 그린 비즈니스를 주목하라’ ‘모바일 생태계에 자원을 배분하라’.

‘한국의 버핏’, 가치투자 대가들과의 가상 점심식사

●박경민 대표=장기적으로 중국 경제가 중요한 것은 맞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에 육박한다. 미국은 연 2~3%에 그쳤다. 그럼 지금 100억원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당연히 중국일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시장 성과는 반대다. 미국이 낫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설명하려면 각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봐야 한다. 중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다. 그러나 경작 가능한 땅은 전 세계의 50분의 1이다. 사막화가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매년 충청북도 땅만큼이 사막으로 변한다. 1950~60년대에는 경작지 확장을 통해, 80~90년대에는 생산성 혁명을 통해 농산물 수확량을 늘려왔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는 한계에 도달했다. 성장의 질을 따져야 한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는 구조에서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 주식을 사야 한다.

●강 회장=당연히 질을 따져야 한다. 주주는 이익을 먹고 산다. 이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뺀 값이다. 이익을 늘리고 싶으면 매출을 늘려야 한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보자. PER이 30~40배다. PER만 보면 비싼 편이다. 경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PER은 낮출 수 있다. 전 세계에 매장을 더 오픈하면 된다. 그럼 매출이 늘고 이익도 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난 이익이 건강할까. ‘희소성’이라는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장기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성장이 중요하다. 질레트는 신흥국에 면도기 프레임을 공짜로 준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프레임을 받은 사람들은 훗날 질레트 면도날을 살 거다.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투자다.

●박 대표=97년 외환위기 전에 기업 방문을 갔었다. 모든 기업이 죄다 설비투자를 30%씩 늘렸다. 물건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서 어디다 팔 거냐고 물었더니 ‘잘 팔리겠지요’ 하고 막연히 답하더라. 개발시대의 성장 방식에서 못 벗어난 거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출받아 설비를 늘렸는데 물건이 안 팔리고, 금리가 올라가면 대책이 없겠다 싶었다. 주식을 정리했다. 그 뒤 외환위기가 왔고 시장은 반 토막이 났다.

●허남권 본부장=성장의 질까지 고민해야 하니 가치투자가 쉽지 않다. 보통 주가가 떨어지면 그 주식이 싸 보이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비싸게 보인다. 시장가격은 항상 옳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같이 주식 하는 사람이 있는 거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팔고 싶은 회사가 아니라 더 사서 물량을 늘리고 싶은 회사가 좋은 회사다.
 
복리는 힘이 세다
●이택환 전 대표=큰돈을 벌려면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 복리 효과 때문이다. 그걸 잘 활용한 사람이 버핏이다. 버핏이 주식매매 차익으로 그렇게 큰돈을 번 거 아니다. 투자한 돈을 재투자해 그런 거다. 미국 주가가 많이 오른 것 같지만 분석해보면 1871년부터 2003년까지 실질 수익의 97%가 배당을 재투자한 데서 나왔다.

●허 본부장=복리는 힘이 세다. 투자에 복리를 적극 응용한 펀드가 ‘배당주 펀드’다. 미국에서 1927년에 1달러 투자했다면 주식시장 시세대로만 치면 지금 106달러다. 배당을 재투자한 경우엔 지금 2592달러다. 복리의 힘이다. 지난달 미국 20여 곳의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에 다녀왔다. 그중 세콰이어펀드라는 곳이 있는데 40년간 260배의 수익을 냈다.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데 연도별로 따지니 복리로 연 14.7%의 수익을 올린 셈이었다. 40년 중 27년은 시장보다 잘했고, 13년은 시장에도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그런데도 40년간 260배의 수익을 냈다. 복리 덕이다.

●이 전 대표=그런데도 왜 복리투자를 실천하지 못할까. 복리의 특성 때문이다. 복리라도 처음에는 자산이 아주 천천히 불어난다. 그러다 어느 임계점을 넘기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자산이 늘어난다. 그런데 그 임계점을 넘기기 어렵다.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주변에 주식 공부 제대로 한 적도 없으면서 수천억원 재산을 모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돈만 생기면 주식을 샀다. 자기를 믿고 신뢰하면서 꾸준히 투자한 사람만이 돈을 벌 수 있다.

●허 본부장=우리 회사는 웬만하면 매매를 안 한다. 매매는 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앞서 말한 미국 출장에서 방문한 한 헤지펀드는 하루 100만 건 넘게 매매해서 연 10%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어떻게 하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린다면 그게 고객이 원하는 길이다. 주식이 제 가치를 찾기 전까지 가치주는 대개 오랫동안 박스권을 맴돈다. 예전의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박스권 상단에 오면 주식 일부를 팔았다가 하단에서 다시 사는 방법으로 주식 수를 늘려가는 투자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추가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주식 수를 1만 주에서 1만2000주로 늘릴 수 있는 셈이다. 배당 재투자와 일맥 상통한다. 복리의 힘으로 주식수를 불리는 것이다.
 
숫자보다 마인드가 중요
●이 전 대표=투자의 세계에서 승패는 분석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 구조를 갖느냐에 달렸다.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코스피지수 1900선이 깨졌다. 그때 누구는 사고 누구는 팔았다. 두려워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투자의 세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주식투자의 성패는 숫자가 아니라 마인드로 판가름 난다. 마인드를 갖추려면 수학보다 역사·철학·인문학에 관심을 둬야 한다.

●박 대표=주식시장에는 머리 좋은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 실패한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남 탓을 한다. 그런 사람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투자는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이다. 그래서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기업탐방도 가고 신중히 투자해야 하는 거다.

●허 본부장=15년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반 토막을 네 차례 경험했다. 시장에서 1등은 다섯 번 해봤고, 꼴찌도 네 번 했다. 나는 안 변했는데 시장이 변하더라. 일등에서 꼴찌 되는 건 순식간이다. 어떤 방식의 투자가 맞는지 정답은 없다. 다만 원칙과 철학을 꾸준히 지키면 성공할 수 있다.

●이 전 대표=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다. 실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주식을 샀다가 손해 보고 파는 거다. 사람들은 보통 이걸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큰 실수는 따로 있다. 좋은 주식을 일찍 팔아버리는 실수다.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마이너스 20% 나서 주식 손절매한 건 다른 데서 20% 수익 내면 된다. 그런데 좋은 주식을 일찍 팔면 그 손실 범위는 무한대다. 현대모비스를 잘 해야 20만원짜리 주식으로 봤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묻더라. 지금 전 세계 돌아다니는 차가 8억 대인데 2050년에는 얼마까지 갈 것 같으냐고. 40억 대라고 하더라. 뒤통수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전 세계 차가 40억 대까지 늘어난다면 현대모비스 주가는 더 가야 한다. 그래서 28만원에 다시 샀다. 열린 마인드로 주식을 봐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면 기회를 놓친다.

●강 회장=투자에 성공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재무제표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등 기본은 갖춰야 한다. 기본이 없는 상상력은 ‘뻥’에 불과하니까.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사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다들 인구가 준다고 난리다. 그렇지만 느는 인구도 있다. 모바일 인구, 노인 인구, 그리고 ‘체류형 인구’다. 쉽게 말해 유학생과 관광객이다. 하루 평균 300만 명이 한국에 머문다면 전체 인구의 6%, 경제활동인구의 15%가 늘어난 셈이다. 이 체류형 인구의 수혜가 가능한 사업이 뭘까. 그래서 호텔신라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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