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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메이드 포 차이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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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구베이 지역에 있는 애플 매장. 자존심 강한 애플도 중국인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코노미스트 외국 브랜드 제품에 대한 중국인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영향력 있는 인터넷 매체 ‘환추왕(環球網)’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에서 도요타와 혼다가 각각 1, 2위에 꼽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도요타는 지난해 리콜 대상에서 중국을 제외해 비난을 받았다. 혼다는 부품공장의 파업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람보르기니·에르메스 등 중국시장 한정 제품 출시

반면 가장 호감도가 높은 브랜드로는 BMW가 꼽혔다. BMW 자체의 품질 우수성도 있지만, 중국 소비자를 중시하는 마케팅 전략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BMW는 지난해 ‘M3 타이거 에디션’ 모델을 개발, 판매하는 행사를 했다. 이 제품은 2010년이 호랑이해인 것을 기념해 BMW가 250대 한정으로 특별 제작한 모델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렌지색 스티치가 들어간 가죽 시트와 헤드레스트에 금색 호랑이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으로 오직 중국에서만 판매됐다.

이에 질세라 명품 자동차로 일컬어지는 람보르기니도 중국시장 한정 판매 제품을 내놓았다. 2010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된 이 자동차의 모델명은 ‘무르시엘라고 LP670-4 수퍼 벨로체 차이나 리미티드 에디션’. 10대 한정 판매되며 회색 컬러의 보디와 스트라이프, SV 로고, 오렌지 컬러로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이다. 푸조 역시 이 자리에서 중국시장 전용으로 개발한 세단 ‘408’을 공개했다. 넓은 내부공간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반영했다. 이외에도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 벤틀리도 앞다퉈 차이나 에디션 모델을 출시했다.

명품업계도 가세했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말 상하이에 새 매장을 내고 ‘상샤(上下)’라는 중국 브랜드 제품을 출시했다. 상샤 제품은 중국 전통 수공예 예술가와 협력 방식으로 생산된다. 기존 서구풍 디자인이 아닌 명나라풍 자단목 가구, 자기 식기, 의류, 장식품, 보석류 등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독특한 중국풍 디자인과 희소가치 덕에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서구 명품업체들이 기존 전통 디자인까지 과감히 포기하고 오로지 중국 소비자만을 위한 특화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리바이스는 중국 신세대층을 겨냥한 새 브랜드 데니즌(Denizen)을 출시했다. 리바이스는 중국인의 체형을 감안해 보다 날씬하게 보이는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클로에(Chloe)는 마르시(Marcie)와 엘시(Elsie) 브랜드의 2011 춘하 신상품을 선보이면서 “붉은색 중국풍”을 강조했다. 구찌 역시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한 라인업을 출시하면서 메인 색상으로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을 선택했다.

디지털 전자회사 역시 13억 중국인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2009년 모토로라는 CDMA와 GSM을 동시에 지원하는 듀얼 스탠바이 방식의 모토(MOTO) E11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설계에서부터 기능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중국인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으로 출시 이틀 만에 3000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행서·초서 등 한자 필기 인식률을 97%까지 끌어올려 호평을 받았다.

삼성 역시 중국시장에 특화된 갤럭시S를 내놓았다. 기존 갤럭시S의 하드웨어 기본사양은 유지하면서 중국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이동통신 기술방식을 운영하는 사업자별 요구를 맞춤형으로 반영해 출시한 것이다.

중국에 처음으로 직영 매장을 개설한 애플은 매장 직원의 유니폼 색깔을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통일했다. 유니폼 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설계, 중국을 위해 제조(在加州設計, 爲中國製造)’라는 문구도 새겼다. ‘중국 소비자는 항상 옳다(中國消費者總是對的)’라는 글귀도 중국인을 으쓱하게 만들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애플도 중국 소비자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는 모양새다.

KFC는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중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베이징 닭고기버거와 유탸오(油條), 죽 등은 모두 중국인의 입맛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외국 기업들이 이렇게 중국 소비자를 위해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는 것은 중국 소비시장이 지닌 어마어마한 폭발력 때문이다. 맥킨지는 중국의 소비시장 규모는 미·일에 이어 현재 3위 수준에서 2016년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소비시장의 성장은 세계적 브랜드를 중국시장으로 집중시킬 뿐 아니라 이들이 중국만을 겨냥한 상품을 출시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신제품 중국에서 먼저 선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소비시장이 대폭 위축된 것에 비해 중국의 소비지출은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다. 중국 소비재 판매 총액은 2009년 12조5000만 위안에서 2010년에는 15조5000만 위안으로 18.4% 증가했다. 증권사 크레디리요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10년 안에 연간 1010억 달러(약 114조원) 규모로 확대돼 세계 최대 큰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자동차와 TV 소비량 세계 1위, 컴퓨터 소비량 세계 2위 등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상품의 세계 최대 소비대국으로 변모 중이다. 구매 파워가 확대되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제품을 제조하는 이른바 ‘고객 맞춤형 특화상품’이 자연스럽게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서양인 위주의 디자인이 이제는 중국인의 기호와 체형, 소비 패턴과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제 해외 기업과 중국의 관계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중국 제조)’에서 ‘메이드 위드 차이나(Made with China·중국 기업과 함께 제조)’로, 다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중국을 위한 제조)’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중국인의 소비 행태와 사고방식을 파악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중국 문화와 전통 관습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하고 발 빠르게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기동성도 요구된다.

‘현대속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중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성공비결도 중국 소비자의 정서와 눈높이를 고려한 차별화된 전략 때문이다. 중국시장을 선진국 시장에서 한물간 구형 제품을 내다 파는 시장으로 간주하지 않고 진출 초기부터 과감하게 최신형 제품을 발 빠르게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다른 메이커의 식상한 구형 모델 출시에 불매운동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소비자가 환영의 박수를 보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11에서 한 글로벌 기업 임원은 “우리는 신제품을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최소한 반년은 빨리 중국시장에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중원축록(中原逐鹿·서로 경쟁해 어떤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의 중국시장은 이제 고객감동까지 고려해야 승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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