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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P세대의 유쾌한 도전 ② 29세 박병선씨, 지진으로 폐허된 칠레서 2년째 구호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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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병선씨(29·앞줄 가운데)가 칠레 콘스티투시온 중앙시장 상인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2월 지진 이후 쓰나미로 폐허가 됐던 마을은 박씨가 주도한 시장 재건 프로젝트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콘스티투시온(칠레)=김효은 기자]


태평양의 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칠레 탈카 주(州)의 해변마을 콘스티투시온.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에 도착해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뼈대만 남은 집과 폐차들의 무덤을 지나면 깔끔한 목재 바닥 위에 컨테이너 가게들이 이어진 시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자동차 부품가게를 하는 훌리오베라(60·여)가 한 동양 청년의 손을 잡고 “그라시야스(고맙다)”를 연발했다. 그는 “코레아노(스페인어로 한국인을 뜻함)가 우리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해서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젊은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전기는 잘 들어오죠? 불편하신 거 있으면 무엇이든 알려주세요.” 짙게 그은 얼굴에 유창한 스페인어까지 구사하는 청년은 한국인 박병선(29)씨다. NGO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칠레 사무장인 그는 훌리오베라의 가게가 있는 ‘중앙시장 재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2월 발생한 칠레 지진 때문. 지난달 동일본 대지진에 버금가는 강도 8.8의 지진으로 500여 명이 숨지고 30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특히 쓰나미가 덮친 콘스티투시온에선 126명이 숨지고 5만 명의 거주민 중 80%가 집을 잃었다. 그러나 1년 후 폐허의 현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었다. 마을 상공회의소 카를로스(36) 부회장은 “마을의 심장(중앙시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서 마을 전체가 살아나고 있다”며 “80개 업체가 다시 입주했고, 주변 식당과 숙박업도 잘 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이 시장을 방문해 우수 재건 사례로 꼽기도 했다.

피녜라 대통령

 중앙시장 재건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나왔다. 당시 과테말라에서 활동하던 그는 지진 발생 후 칠레에 급파됐다. 전 세계에서 모인 지원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주정부와 논의하기 위해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살았다. 한 동네 총각처럼 살갑게 다가서는 그에게 현지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씨는 “구호물자가 있어 당장의 끼니는 이어갈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탈카 주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나눠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개별 지원은 장기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씨는 상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땅을 제공받아 시장을 다시 세우자”고 설득했다. 카를로스 부회장은 “로빈(박씨의 현지 이름)은 너무 꼼꼼해 피곤할 정도”라며 “처음엔 젊은 기운만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해 8월 박씨는 주정부 60%, 굿네이버스 30%, 개별지원금 10%를 모아 4억원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한인 동포에게서 기부금 3000만원을 받아 초등학교 재건축에 투입했다. 박씨는 “나 혼자 한 건 하나도 없다. 단체의 지원, 동포들의 도움, 상인들의 열성적인 참여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시장 재건의 경제 효과는 직접수혜 450명, 간접수혜 7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박씨는 올 2월 능력을 인정받아 칠레 사무장으로 발령이 났다. 20대의 나이에 한 나라를 담당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체육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박씨가 원조·구호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은 대학 시절 단기 해외봉사에서 목마름을 느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키르기스스탄·중국·인도네시아·인도·케냐에서 봉사를 했다. 한 달, 6개월, 1년, 점점 봉사 기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2009년 굿네이버스에 들어가 과테말라로 파견됐다.

 박씨는 스스로를 ‘세계인’이라 느낀다. 그는 “잘사는 나라에서 못사는 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같은 세계인이라는 인도주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비행기에 오른 이후로 김치 먹는 것도 끊었다. 한국 음식에 익숙지 않는 사람들이 냄새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원조’다. 박씨는 “빈곤 지역에 사회적 기업이나 공장을 세워서 원조단체가 빠져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박병선씨의 글로벌 DNA

1. 한국인의 특징인 정(情)으로 다가선다.

2. 김치도 끊을 만큼 독하게 현지에 적응한다.

3.‘유목민’의 삶을 즐기고 안주하지 않는다.

콘스티투시온(칠레)=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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