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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 백남준을 돌아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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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양민하의 ‘묵상 0401’. 관객들의 움직임과 소리에 따라 화면의 파형들이 달라지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백남준(1932~2006)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 박제된 신화가 아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예술의 영역에 끌어들였고, 장르를 넘나들며 미술의 외연을 확대했다. 무엇보다 미래인이었다. 디지털 기술이 삶과 예술을 획기적으로 돌려놓을 것을 예언했다.

 그의 5주기를 맞아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미디어 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가 열리고 있다. 미래인 백남준의 선구안에 집중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도 동참했다. 과거 백남준의 조수, 강의를 들었던 작가들이 포함됐다. 비디오 아트, 사운드아트, 웹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인터미디어 개념의 전시다. 전시 제목 ‘미디어 스케이프(Media Scape)’는 숱한 미디어에 둘러싸인 요즘 풍경을 일컫는 말. ‘백남준의 걸음으로’는 백남준이 1990년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며 연 전시 ‘늑대의 걸음으로’에서 따왔다.

 전시 1부는 백남준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1974년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논문 ‘후기 산업시대를 향한 미디어 기획’이 국내 처음 공개된다. ‘일렉트로닉 수퍼 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제시한 논문이다. 초고속 네트워크 사회를 예견했다. 컬러TV 64대가 지그재그로 설치된 ‘W3’는 ‘WWW(웹) 세상’에 대한 암시로 읽힌다.

 여러 대의 ‘TV의자’와 ‘모니터 샹들리에’ 등이 모인 ‘TV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 코너에는 “당신은 아는가? 언제쯤 대부분의 미술관에 TV의자가 놓이게 될지를?”이란 백씨의 질문이 붙어있다. ‘자석TV’ ‘닉슨TV’ ‘참여TV’ 등은 모니터 영상을 변환시키는 기술 장치를 함께 전시해 더욱 흥미롭다. 75년 미국의 케이블 13번 채널에서 정규방송이 끝난 후 상영된 5분짜리 비디오물 30개로 구성된 ‘모음곡 212’도 모두 공개된다. 미디어 통제사회에 대한 비판이 녹아있는 뉴욕 스케치다. 이중 ‘패션 애버뉴’는 31일까지 대형 LED 디스플레이가 설치된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에서 상영된다(가나아트센터 협력).

 2부는 후배들의 작업이다. 뒤셀도르프에서 백남준의 수업을 들었던 조안 힘스커크와 더크 페즈먼스로 구성된 ‘조디’는 LED 모니터가 오작동하는 ‘스크린오류’를 선보인다. 90년대 웹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팀이다. 역시 뒤셀도르프에서 백남준을 사사하고 조수로도 일했던 얀 페르벡은 4채널 비디오 ‘눈 앞의 밝은 미래’를 내놓았다. 크리스틴 루카스는 인터넷 ‘새로고침’ 기능을 자기 이름을 고치는 법적 절차를 통해 구현하고, 이를 작품화한 ‘새로고침’으로 눈길을 끈다.

 김기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그리기’에 도전한다. 턴테이블 위 LP판처럼 보이는 장치에 흑연으로 그림을 그리면 백남준의 육성이 다른 높낮이로 들려온다. 마리사 울슨은 백남준의 파동조작기를 사용해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블랙 오어 화이트’를 재구성한다.

 스타작가 빌 비올라의 비디오 ‘정보’(1973)와 ‘마지막 천사’(2003)도 깜짝 전시된다. 그는 77년 백남준의 비디오 ‘과달카날 레퀴엠’을 촬영한 인연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내 백남준 라이브러리도 문을 열었다. 7월 3일까지. 031-201-8512.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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