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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차례 원전사고 수습 … 카터의 핵위기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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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직후 원전 통제실을 방문한 지미 카터 대통령(가운데).

지미 카터(Jimmy Carter·87) 전 미국 대통령이 해군장교로 근무하던 1950년대 원자로 복구 결사대에 참가했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호에서 보도했다. 이 잡지는 카터가 대통령에 재임 중이던 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러한 경험을 살려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무(無)계획’으로 허둥대고 있는 일본 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2년 미 해군 중위로서 원자력잠수함 개발요원으로 근무하던 카터는 캐나다 초크리버 원전의 원자로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20여 명의 부하와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방사능 오염수가 흥건한 원자로 건물 지하에서 복구작업을 벌였다. 90초 이상 작업현장에 머물지 못할 정도로 방사능 피폭 위험이 컸다. 작업을 마치고 나서도 6개월간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올 정도였다. 카터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복구를 위해 방사능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들어간 ‘50인 원전 결사대’의 원조였던 셈이다.

 카터가 초크리버 작전에서 쌓은 경험과 핵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사고에서 빛을 발했다. 79년 3월 28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의 2호기에서 냉각계통 고장과 직원의 실수로 핵연료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현장 관계자들은 갈팡질팡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원자력 전문가 해럴드 덴튼을 현장에 급파해 사고 수습을 맡겼다. 그리고 그와 직통전화를 개설했다.

 방사성물질이 대기로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주민 10만여 명이 한꺼번에 대피하는 등 혼란이 빚어지자 덴튼은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카터 대통령은 국민의 방사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고 발생 4일 뒤 현장을 직접 방문, 방호 부츠만 신은 채 원전 내부를 시찰했다.

 그리고 덴튼의 의견에 따라 인근 군부대에서 800t의 철강블록을 가져와 방사능 차단막을 만들었다. 신속한 대처 덕분에 노심용융에도 불구하고 유출된 방사성물질은 미량에 그쳤다. 덴튼은 “카터 대통령의 핵에 대한 이해와 결단력이 최악의 참사를 막았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12일 “▶정보의 일원화 ▶현지 책임자의 임명 ▶관료주의 배제 등 세 가지가 스리마일 원전사고 해결의 열쇠가 됐다”며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이를 배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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