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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질주!IT혁명] 5. 코리안 드림에서 월드 드림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법률사무소. 인터넷 골프 게임을 개발해 요즘 세계 게임업계에서 '뜨고 있는' 벤처기업 지오인터랙티브의 김병기(37)사장이 미국인 변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6일부터 열리는 '2000년 정보가전(CS)쇼' 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로드쇼를 벌이기 위한 전략회의 때문이다. 김사장의 당면 목표는 '세계 증시의 꽃' 으로 불리는 나스닥 상장이다.

이에앞서 3일 밤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 인근의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이곳에 입주한 35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사장 가운데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 역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 회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게 목표다. 인터넷 업체 웹포러스의 김세은(25.여)사장도 내년 상장을 목표로 직원 7명과 함께 자정 가까이까지 불을 훤히 켠 채 일에 파묻혀 있다.

월드 드림을 꿈꾸는 정보통신기술(IT) 벤처 기업인들이 뛰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진은 물론 이제 막 벤처기업을 창업한 10대 대학생도 있다.

인터넷이 지구촌을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엮고 있는 세상에선 '한국 기업' 이 아닌 '세계 기업' 으로 발돋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벤처기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 진출 및 나스닥 상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지난해 두루넷의 직상장이 자극제가 됐다.

LG경제연구원의 이한득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 인터넷 업체의 경우 해외 진출을 않고는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없다" 며 "특히 전세계 첨단 기업들이 모여 있는 나스닥에 상장된다는 것 자체가 국제적으로 신인도를 높이는 호재여서 자금 조달에도 긍정적" 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 위치한 인터넷 전화업체 다이얼패드. 최근 국내에서 무료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새롬기술의 자회사다.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선풍적인 인기다. 이 회사의 안현덕(35)사장이 세워놓은 올해 경영목표도 나스닥 연내 상장이다.

새너제이 인근 팔로알토에 위치한 아이팝콘의 사무실에서도 재미교포 사업가인 아이크 리(47)사장 등 10여명의 임직원들이 미국 전역을 도는 로드쇼를 최종 점검하느라 분주하다.

미국.한국.중국.일본 등을 연결하는 아시아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현지 IT전문지인 '산호세머큐리뉴스' 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대기업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하나로통신과 코리아데이터시스템.한통프리텔.신세기통신.한솔PCS 등이 한국 기업으로는 두번째가 될 나스닥 직상장을 노리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신윤식(64)사장은 "3월 중 나스닥 상장을 위해 뉴욕과 홍콩 증권가에 있는 법률 파트너들과 함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코리아데이타시스템(KDS)도 삼보컴퓨터와 합작으로 설립한 미국내 PC 판매 법인인 e머신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터넷 중견업체인 한글과컴퓨터.한별텔레콤.다음커뮤니케이션.인터파크.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로커스.나모인터랙티브.큰사람컴퓨터.노머니커뮤니케이션 등도 월드 드림을 꿈꾸고 있다.

창업 초년생들도 의욕적이다. 이화여대 4년생으로 인터넷카드업체인 카드코리아를 설립한 김경진(22.여)사장도 실리콘밸리에 있는 고교 동창을 통해 현지 서비스를 하면서 나스닥을 향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해마다 두 배 꼴로 늘어나는 벤처기업들도 대부분 같은 꿈을 갖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02년에는 2만개, 2006년에는 4만2천개로 예상된다.

나스닥 상장을 전제조건으로 한 벤처기업 투자회사까지 나왔다. 벤처창업투자회사인 와이즈&내일은 유망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나스닥 상장에 필요한 자문도 해 준다.

정부도 적극적이다.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은 "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키우고 있는 벤처 기업 중 일부를 올해 실리콘밸리로 진출시킨 뒤 나스닥 상장까지 추진하겠다" 고 밝혔다.

대우증권의 이재호 연구원은 "현재 10여개 업체가 나스닥 진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적어도 3곳 정도는 올해 상장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와이즈&내일의 송호상(46)사장은 "까다로운 나스닥 상장 요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식 경영풍토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고 지적했다.

우선 회사의 투명성이 입증돼야 한다. 서울대 최도성 교수는 "나스닥은 코스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투명성' 을 요구한다" 고 말했다.

투자가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도는 로드쇼도 열어야 한다. 연세대 연강흠 교수는 그러나 "우리 기업은 인지도가 떨어져 투자자 모으기가 쉽지 않다" 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상품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서울대 윤계섭 교수는 "현재의 외형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과 기술력을 중시하는 게 미국의 풍토" 라고 충고했다.

두루넷의 김종문 전무는 "나스닥 상장을 위해 미국.홍콩.싱가폴.영국.독일.프랑스.이태리 등 7개국 14개 도시에서 모두 1백50여 투자사를 대상으로 로드쇼를 가지는 등 엄청난 노력을 했다" 며 "3주간의 설명회에서 2천여개의 질문을 받아 조목조목 답변해 준 일이 가장 힘들었다" 고 말했다.

한편 LG의 이한득 연구원은 "나스닥 상장이나 해외 진출을 섣불리 시도했다가 좌절될 경우 신인도가 크게 떨어져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며 "현지 전문가를 통한 시장 분석 등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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