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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중국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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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래프가 두 개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실시한 외교 관련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도표1은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친근감, 도표2는 현재의 중일관계의 조사 결과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닉슨의 중국방문에 쇼크를 받아 1972년에 서둘러 국교를 정상화하고 수교를 미국보다 먼저 했습니다. 미국보다는 7년 한국 보다는 20년 앞섰습니다. 내년은 한중 수교 20년, 중일 수교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도표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보입니다. 중국이 일본과 수교를 맺은 1972년은 문화대혁명 시기입니다. 일본은 전공투(全共鬪)세대가 득세하던 시절로, 우리로 치면 ‘386’이 사회의 주류였던 시절입니다. 진보의 시대였고, 문화대혁명을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시도로 미화해서 인식했습니다. 조반유리(造反有理)로 대표되는 모든 반란은 정당하다는 문화대혁명의 논리를 신봉하는 일본판 홍위병이 일본 지식계를 휩쓸었습니다. 중일관계는 팬더와 마오타이를 주고받으며 중일우호의 슬로건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중국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 정치가와 엘리트에 불과했습니다. 일반인은 중국 여행을 꿈꿀 수 없던 시절입니다. 일부 우호단체들 만의 교류가 있었고 중국 여행비용도 당시 수십 만 엔을 호가해 일반인은 감히 중국을 가보겠다고 생각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수교 39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줍니다. 교류가 늘면 늘수록 호감도는 갈수록 낮아졌습니다. 최근의 카운터 블로우는 센카쿠 열도 중국어선과 일본 경비선 충돌 사건이었습니다. 중국은 전례없이 강하게 나왔고 일본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지난 1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던 시점에 중국의 국가 GDP총량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일본이 어떤 나라였습니까? 일본은 중국에 미국에 앞서 정부개발원조(ODA)를 제공했고, 89년 천안문 사건 이후에도 선진국으로는 처음으로 ODA를 재개했습니다. 2001년 중국의 WTO가입에도 일본은 중국을 많이 부분에서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센카쿠를 계기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등 강하게 일본을 압박했습니다. 전후 일본의 대중외교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주장이 나온 이유입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40여년 전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중국위협론’, ‘중국이질론’이 팽배합니다. 돌이켜 보면 일본이 서독을 제치고 GDP 세계 제2위 자리를 차지한 것인 1968년이었습니다. 도쿄 올림픽 개최 4년 후였죠. 43년간의 2인자 자리를 중국에 빼앗긴 것입니다. 80년대 일본 경제가 팽창할 때 세계적으로 라이징 선 운운하는 ‘일본 이질론’이 풍미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버블이 꺼지면서 그 이질론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중국은 또 어디로 갈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의 모두 거부하는 중국은 ‘이질(異質)’의 국가일까요? 아니면 ‘개성(個性)’이 지나치게 독특한 나라일까요? 이런 질문은 한국에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20년 먼저 간 일본의 경우에서 타산지석,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주 교보문고에 들렸다가 중국에 관한 일본의 문고판 서적 몇 권을 샀습니다. 주말에 그 가운데 일본국제정치학회장을 역임했던 고쿠분 료세이(國分良成) 게이오대 교수가 펴낸 『중국은 지금(中国は、いま)』이란 책을 들춰봤습니다. 위의 내용은 고쿠분 교수의 서론에 나오는 책의 집필 취지입니다. 일본의 중국 전문가를 모아 정치·군사·경제·사회·국제관계 측면에서 5~10년 후의 중국을 조감해보자면서 기획한 책입니다. 정독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출판된 지 한 달도 안된 따뜻한 책이기도 하고요. 내용은 앞으로 계속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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