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이상의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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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02면

한옥 지붕 위에 네온 글씨가 호박 넝쿨처럼 가득 널려 있습니다. 아, 우, 흐, 이…. 하얀 불이 들어온 글씨는 뜻 모를 부호입니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4-10번지.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1910~37, 본명 김해경)의 백부 김연필의 집터 중 일부입니다. 이상은 세 살 때 백부의 양자로 입적됐죠.

속절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질 뻔한 이곳이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2009년 매입했고,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설계를 맡아 오는 6월부터 새로운 모습의 이상 기념관 공사가 시작되는 것이죠.

6일 오후 6시. 새큼한 나물 무침과 구수한 빈대떡 내음이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던’ 골목까지 번졌습니다. 이상 기념관 공사를 앞두고 이날부터 시작된 ‘이상과의 대화’ 행사의 개막식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약 두 달 동안 이곳에서는 퍼포먼스, 영화 상영, 워크숍 등 이상을 기리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온은 조형예술가 유영호씨의 작품입니다. 이상의 난해한 시를 현대적으로 풀어본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유럽에 가보면 거리 곳곳에 누가 뭐했던 곳이라는 표지가 적지 않습니다. 그게 전통이고 역사이며 문화니까요. 그런 흔적을 느껴보기 위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요. 우리에게도 이렇게 새 생명을 찾은 문화유산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새봄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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