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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첫 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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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간단한 첫 문장에는 그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 말고 또 어떤 역할이 있을까? 바로 두 번째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카피라이터 조셉 슈거맨이 저서 『첫 문장에 반하게 하라』(1998년)에서 한 조언이다. 첫 문장은 첫인상이다. 헤밍웨이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진실한 문장’이 그리 쉽게 떠오르겠는가. 첫 문장 쓰기의 고통이 자주 얘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의 ‘첫 문장 탄생기’는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칼의 노래』를 쓸 때 그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한 줄에서 막혀 버렸다.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를 놓고 극심한 고민을 한 탓이다. 결국 그는 후자를 택했다.

 탁월한 문학작품은 종종 탁월하게 시작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도 그렇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세상에, 소설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이 문장에 놀란 나머지 소파에서 굴러떨어졌을 정도다.

 비범한 첫 문장은 다른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에이더』에서 “행복한 가정들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정은 엇비슷하다”고 쓴 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머리를 변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미국의 서평 전문지 아메리칸 북리뷰는 ‘첫 문장이 뛰어난 소설 100권’을 뽑기도 했다. 1위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 장대한 이야기와는 대조적인, 싱겁기까지 한 출발이다. 물론 첫 문장만이 아니라 작품 전반의 완성도를 고려한 선정일 터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미국에서 번역 출간돼 8일 현재 아마존닷컴 40위권 안에 진입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한 글을 오래 고민해 왔지만 쓰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 문장이 불시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엄마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농축된, 흡인력 강한 한 줄이다. 두 번째 문장, 그 이후를 계속 읽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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