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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해금 연주자 꽃별 5집 앨범 ‘숲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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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해금 연주자 꽃별은 해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서양 악기로 기타를 꼽았다. “기타가 손가락으로 찍어 놓은 점을 해금이 선으로 잇기 때문에 조화로운 소리가 난다”고 했다. [김태성 기자]

이런 음악은 울고 있다. 분명 목놓아 울고 있다. 해금 연주자 꽃별(31)은 “해금 소리는 울음”이라고 말한다. 울음이 꼭 슬픔일 까닭은 없다. 울음은 기쁨일 수도, 감격일 수도 있다. 인간의 가장 예민한 감성은 울음을 수반한다. 슬퍼서도 울지만 기뻐서도 운다. 두 줄짜리 해금의 소리는 그런 것이다. 그 울음을 따라 인간의 희로애락이 음악으로 아슬아슬 빚어진다.

꽃별이 2년 만에 5집 앨범‘숲의 시간’을 냈다. 모두 열 두 트랙, 열 두 색깔의 울음이 담겼다. 전작 앨범까진 뉴에이지풍의 크로스오버 색깔이 짙었다면, 이번엔 해금의 본질로 곧장 밀고 들어간 음악으로 촘촘하다. 그는 “울음의 본래 색깔, 밑 감정을 그대로 토해낸 음반”이라고 했다.

 “그 동안 해금이 화려하게 변주되는 음악은 많이 해봤어요. 이번엔 해금이 가장 해금다울 수 있는 음악이 무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해금이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자 애썼죠.”

 그의 말마따나 이번 음반은 해금의 자리가 넉넉하다. 피아노와 기타가 어우러지곤 하지만, 해금이 그 중심을 이탈하는 일은 없다. 특히 4번 트랙 ‘쉬’는 해금과 거문고가 속삭이듯 이어지는 정통 국악에 가까운 음악이다. 트랙마다 자신의 단상을 글로 적었는데, ‘들리지 않는 노랫말’이 해금 소리를 더 풍요롭게 한다.

 꽃별이 맨 처음 해금과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어느 날 음악 연습실을 지나치는데 문득 해금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라면, “마치 무슨 말을 건네듯 해금이 이야기를 걸어왔다”고 했다. “내가 해금을 택했다기보다 해금이 나를 불러줬다”고 한다. 이 신화 같은 이야기가 납득이 안 돼 물어봤다. 해금이 대체 어떤 악기이기에?

 “해금은 그 어떤 악기보다 연주자와 밀접한 악기에요. 연주할 때마다 절대 똑같은 소리를 내는 법이 없어요. 제가 해금을 주무를 때 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당황스럽죠. 어떤 상황에서도 해금 앞에선 제 감정을 숨길 수가 없거든요. 감정뿐만 아니라 제 숨소리까지도 그대로 전달되죠.”

 언젠가 소설가 김훈이 언급했던 그대로다. 김훈은 ‘글과 몸과 해금’이란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까 해금은 인간의 몸이 그대로 발현되는 악기다. 해금은 연주자의 몸과 악기의 몸체가 교감하며 음을 조각해낸다. 김훈이 꽃별을 만나 그랬단다. “글 힘이 빠진 날엔 해금을 듣는다.” 꽃별은 해금을 연주하는 동안 감출 수 없는 육체의 질감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다”고 했다.

 그러니 5집 타이틀 ‘숲의 시간’은 얼마나 해금다운 이름인가. 숲은 몸의 공간이니까. 나무와 풀과 흙의 몸체가 사각거리며 음을 빚어내는 곳이니까. 그는 “숲에선 늘 어떤 몸체가 생겨나고 있다. 그 평화로운 시간을 해금 소리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꽃별은 재즈 연주자 키스 자렛의 오랜 팬이다. 그저 흘러가지만 조화로운 화음을 빚어내는 재즈처럼 어딘가 자연스런 흐름이 도드라지는 음악에 이끌린다고 했다. “무언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이 매력적”이라고 믿는 그다. 울음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성의 발현이다. 꽃별의 해금은 그래서 흐느낀다. 울음이 멜로디가 되는, 목놓아 울고 있는 음악이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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