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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69) 프리츠커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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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해마다 이맘때면 세계 건축계가 술렁입니다. 건축 분야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들에게는 뭐에 비할 수 없는 영예로 꼽히기 때문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상은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30년 지구촌 건축의 발전과 함께해왔습니다. 올해 수상자와 프리츠커 상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은주 기자

Q 프리츠커상은 무엇인가요.

A 매년 하얏트 재단(Hyatt Foundation)이 인류와 삶의 환경에 기여를 하고 있는 건축가에게 주는 상입니다. 생존한 건축가를 대상으로 하며 재능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냈는가를 보는 것이죠. 이 상은 한 작품만 뛰어나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 점도 중요한 요소로 평가됩니다.

올해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58)의 대표작 포르투갈 브라가 경기장(Braga Stadium·2004). 남성적인 힘을 보여주면서도 주변의 파워풀한 자연 풍경과 친근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라는 자연과 인공적인 건물이 잘 어울려야 좋은 건축이라고 말했다. [Luis Ferreira Alves 촬영 · ©The Hyatt Foundation]



Q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요.

A 상의 이름은 하얏트 재단 전 회장의 성(姓)에서 따왔습니다. 1979년 당시 회장인 제이 A 프리츠커(1922~99)가 아내 신디 프리츠커와 함께 상을 만들었습니다. 프리츠커 회장은 “시카고 사람으로서 건축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카고는 마천루의 탄생지며, 이곳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물들로 꽉 차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죠.

호텔 소유주인 그가 디자인의 힘을 깨달은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겁니다. 67년 애틀랜타 하얏트 리전시 호텔을 지었을 때, 아름다운 아트리움(현대식 건물 중앙에 유리로 지붕을 한 높은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그게 곧 세계에 하얏트 호텔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이 프리츠커는 “디자인이 호텔에 찾는 손님과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생존 건축가들의 작업에 경의를 표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은 78년 무렵입니다. 의미 있는 상을 제정해 건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건축가들의 창작활동을 격려해야겠다는 의도였지요.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립니다. 이는 단순히 최고의 영예라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선정 방식이나 상금 수여 등에서 노벨상을 모델로 했기 때문입니다. 수상자는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고, 심사위원단은 선정 이유를 꼼꼼하게 밝힌 공식적인 글(a formal cirtificate)을 발표합니다. 87년부터 청동 메달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해마다 수상자에게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리미티드 에디션)을 부상으로 수여했다고 합니다.

2010년 수상자 세지마 가즈요·류에 니시자와가 설계한 스위스 로잔의 ‘롤렉스 교육센터’. [Hisao Suzuki 촬영 · ©The Hyatt Foundation]



Q 심사는 어떻게 하나요.

A 프리츠커상의 후보는 누구나 추천할 수 있습니다. 매년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500명 이상의 건축가가 후보로 지명됩니다. 전문가 심사위원단은 보통 5~9명으로 구성됩니다. 한번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면 몇 년간 계속 맡습니다. 심사위원단은 한 번에 전원이 바뀌는 형식이 아니라 기존 심사위원이 몇 명 남으면서 자연스럽게 새 멤버가 한두 명 참여하는 형식이죠.

구 멤버와 새 멤버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심사위원에는 건축, 비즈니스, 교육, 출판, 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들이 고루 참여합니다. 역대 심사위원 중 렌조 피아노(2006~현재)를 비롯해 1회 수상자였던 필립 존슨(1981~85), 89년 수상자였던 프랭크 O 게리(93~95, 2003~2006),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교수 호르헤 실베티(96~2004), FIAT 전 회장 조반니 아그넬리(84~2003) 등의 이름이 눈에 띕니다.

Q 첫 수상자는 누구였나요.

A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입니다. 36세에 건축가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건축주도 되어 보고, 건축 비평도 하고, 책도 쓰고,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건축·디자인 부서를 만들었죠. 하버드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건축가가 되기 전에 건축 관련 일을 설계 빼고 다 해 본 셈이죠. 그러다가 뒤늦게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미국에 오도록 주선한 사람도 필립 존슨이었습니다. 49년 MoMA의 건축 담당 첫 디렉터로 재직하던 시절, 그가 직접 디자인한 집이 바로 ‘글래스 하우스’입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지만, 독창적인 우아함을 연출해낸 것으로 필립 존슨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작입니다. 이 밖에 뉴욕시립극장(60~64), 뉴욕 AT&T 빌딩(78~84·현 소니 빌딩)도 그가 설계했죠.

Q 여성 수상자도 있나요.

A 2004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59)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리츠커 상을 받았습니다. 25년간 여성 수상자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는데, 자하 하디드에 이어 2010년에는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55)가 받았죠.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으로 간주된 건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두 여성이 각각 이라크·일본 출신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바그다드 출신으로 베이루트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영국 AA스쿨에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80년부터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열어 활동해 왔는데, 무엇보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관습을 뛰어넘은 실험적 디자인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종이 건축가’(도면에 그림만 그리고 있다는 뜻), 혹은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고 불릴 정도였죠.

하지만 93년 설계한 독일 비트라 가구 공장 내 ‘비트라 소방서’는 실험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현재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워지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설계했습니다.

반면 세지마 가즈요는 도발적이고 역동적인 작품을 보여준 하디드와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심플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의 건축물은 세련되고, 핵심적인 퀄리티만을 갖춰 단단하면서도 뒤로 물러난 듯한 자세로 그 주변의 사람과 사물,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주인공으로 돋보이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Q 일본 건축가들은 몇이나 수상했나요.

A 일본에서는 도쿄도청사·요요기 경기장·오다이바 후지TV사옥을 설계한 단게 겐조(1913~2005)를 비롯해 93년 마키 후미히코(83), 95년 안도 다다오(70), 세지마 가즈요 등 모두 4명이 상을 탔습니다.

마키 후미히코는 도쿄의 스파이럴 빌딩을 비롯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아사히TV 등을 설계했고, 안도 다다오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를 비롯해 홋카이도 ‘물의 교회’, 도쿄 오모테산도 힐스, 나오시마 섬의 치추미술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죠. 일본 전문가들은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습니다.

이소자키 아라타(80)는 초창기 때부터 5년(79~84) 동안, 마키 후미히코는 자신이 프리츠커 상을 받기 훨씬 전인 85~88년에 심사위원를 했죠. 건축가 반 시게루(54)도 2006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 건축전문지『A+U』편집장 나카무라 도시오도 91~99년에 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Q 한국 건축가가 수상한 적은 없나요.

A 아직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올 수상자에 포르투갈 모라
“독창성보다 좋은 건물이 먼저”

최근 발표된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58·사진)입니다. 포르투갈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받은 것은 1992년 수상한 알바로 시자(Alvaro Siza)에 이어 두 번째죠.

심사위원장인 더 로드 팔럼보는 모라에 대해 “건축의 전통을 담아내면서도 시대성이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라고 평가했습니다. 힘이 넘치면서도 단아하고, 과감하면서도 섬세하며, 권위와 친근함을 동시에 갖춘 건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알바로 시자 밑에서 일하던 모라는 80년에 독립한 후로 지금까지 30년 동안 60 여 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작품의 유형도 작은 주택에서부터 극장, 쇼핑센터, 호텔, 아파트, 사무빌딩, 갤러리와 미술관, 학교, 스포츠 시설, 그리고 지하철 역까지 다양합니다. 고국인 포르투갈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스페인·이탈리아·독일·영국·스위스에서도 작업을 했네요. 그는 ‘미스(Mies)적인 건축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근대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9~1969)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죠. 일부에서는 독창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소투는 이렇게 받아쳤다고 하죠. “아주 독창적이지만 후진 것을 만들기보다 차라리 독창적이지 않지만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 게 낫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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