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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국민참여재판 결과 함부로 못 뒤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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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민이 직접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결과에 대해 대법원이 또 한번 힘을 실어줬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까지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하자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전원 일치로 무죄 평결했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며 원심을 깨고 다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에도 국민참여재판 결과를 뒤집은 항소심을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었다.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흉기를 휘둘러 이웃을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된 문모(48)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문씨에게 폭행죄만 적용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었다.

 재판부는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 전 과정에 참여한 뒤 만장일치로 내린 무죄 평결이 1심 재판부의 심증과 일치해 그대로 채택됐다”며 “항소심에서 증거조사를 통해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심이 여러 명의 관련자를 증인신문한 뒤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 평결과 똑같이 판단했는데 2심이 새로운 증거조사 없이 결론을 뒤집은 것은 공판 중심주의와 증거 재판주의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문씨는 2009년 10월 이웃 업체 사장에게 작업용 손도끼를 휘둘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 의견대로 “살의가 있었다면 가벼운 상처로 그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최소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3월에는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가 강도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받은 최모(24)씨에 대해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의 판단을 합리적 근거 없이 뒤집었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국민참여재판 결과대로 판결이 확정됐다.

 ◆평결과 판결 일치율 91%=배심원 평결은 재판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만 있다. 그러나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하는 비율은 91%에 이른다. 국민참여재판의 신청 건수는 처음 도입된 2008년 233건에서 지난해에는 437건으로 87.6% 늘었다. 실제 참여재판이 이뤄진 건수도 지난해 162건으로 2008년(64건)의 2.5배가 넘는다.

법원이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배제하는 비율도 2008년 26.2%에서 지난해 17.2%로 낮아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시행 3년 만에 정착 단계를 넘어서 활성화 단계로 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국민참여재판=일반 국민이 형사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와 형량을 토론해 의견을 전하고 이를 재판부가 참작해 최종 판결을 내리는 제도. 2008년 1월 도입됐다. 살인·강도·강간 등 중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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