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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가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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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역사서를 편찬할 때 다른 민족을 열전(烈傳)에 포함시켜 서술했다. 자신들과 다른 풍속이 있으면 기록하는데 우리 동이족(東夷族)을 적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음주가무(飮酒歌舞)에 관한 기록이다. 남조(南朝) 송(宋)의 범엽(范曄:398~446)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 ‘동이(東夷)열전’은 2000여 년 전 부여·고구려·동옥저·예·삼한 등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적은 것이다.

 ‘동이열전’은 서문에서 “동이족들은……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憙飮酒歌舞)”고 기록하고 있다. 그 부여(夫餘)조에는 구체적으로 “길에 사람이 밤낮없이 다니는데, 노래하기를 좋아해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好歌吟 音聲不絶)”고 전하고 있다. ‘동이열전’‘고구려’조에도 “그 풍속은 모두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데, 밤에는 남녀가 떼 지어 노래 부른다(群聚爲倡樂)”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예(濊)조에도 “항상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晝夜飮酒歌舞), 이를 무천(舞天)이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같은 책 한(韓)조도 “항상 5월이면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 술자리를 베풀고(晝夜酒會), 모여서 노래하고 춤춘다(群聚歌舞)……10월에 농사를 끝낸 후에도 이같이 한다”고 적고 있다.

 진(晋)의 진수(陳壽:233~297)가 3세기 초·중반의 모습을 기록한 『삼국지(三國志)』 ‘동이열전’ 부여조에는 “공손히 술잔을 주고(拜爵), 술잔을 닦는다(洗爵)”라는 술자리 예법이 전해진다. 발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송(宋)나라 엽륭례(葉隆禮)가 편찬한 『거란국지(契丹國志)』에는 ‘왕기공행정록(王沂公行程錄)’을 인용해 발해의 가무풍습을 적은 글이 있다. “발해는 매년 설날 때 모여 즐기는데 먼저 노래와 춤을 잘하는 몇 명이 앞서 가면 사녀(士女)들이 뒤따르며 노래를 받아 부르면서 원을 만들어 도는데, 이것이 답추(踏鎚)”라는 내용이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편찬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대 동이족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던 흥(興)의 민족이었다. 유교(儒敎)가 국시가 된 이후 근엄하게 변했지만 이는 우리 민족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노래방이 생긴 지 20년. 하루에 무려 190만 명이 노래방을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 핏속에 흐르는 선조들의 신명 나는 음주가무의 DNA가 되살아난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