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방사능 바람의 궤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윤순창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방사성물질 유출로 온 국민이 방사능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기상청은 ‘편서풍 지역인 우리나라에는 방사성물질이 날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발표했고, 원자력 관련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후쿠시마에서 배출된 세슘과 방사성 요오드가 전국 12개 방사능측정소에서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과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정부가 말을 바꾸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대다수 국민은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청정지역인 제주도에서 대기를 분석해 왔다. 아시아 대륙에서 날아오는 대기오염물질과 기후변화 원인물질들이 주된 측정 대상이다. 제일 먼저 하는 게 이 물질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제주도에 왔는지 공기의 궤적을 분석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부근(중위도)의 대류권 상층에서는 항상 편서풍이 분다.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을 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돌지 않는 한, 즉 흔한 말로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우리나라 상층 대기에서 편동풍이 부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상에서 약 1㎞ 이내의 지표층(대기경계층)에는 지표면의 성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시시때때로 바뀔 수가 있다. 상층에서는 서풍이 부는데, 지표층에선 동풍이 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경우라도 한반도에서 120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에서 한반도까지 방사성물질이 직접 날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필자가 지난 2주간의 바람 자료와 지난해 봄철의 바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에서 지표층 바람이 한반도까지 도달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또 지난 2주간 한반도에 도달한 공기의 역궤적을 추적해 보니 거의 모두가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경우였다. 따라서 최근 한반도에서 측정된 후쿠시마발 방사성 물질은 상층의 편서풍을 타고 지구를 돌아서 날아온 것이 확실시된다. 검출된 방사능의 세기도 평소에 우주에서 오는 방사능의 연간 피폭량의 만분지 일도 안 되는 극소량이다.

 하지만 왜 국민들이 정부기관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할까. 한반도 전역에서 세슘과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자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마치 기상청이 국민을 속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난하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도 방사능 측정 자료를 숨기고 있다가 마지못해 발표했다는 듯이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방사능 검출 문제는 과학적 현상이며 정부가 숨길 필요도,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현재로선 기상청과 원자력안전연구원보다 더 정확한 측정 자료와 분석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곳도 없다.

 환경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다. 책임 있는 정부기관이 나서 민간 전문가와 시민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정보와 대응책을 도출해야 한다. 대국민 발표창구를 일원화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혼선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국민들도 이 과정에서 사소한 잘못과 실수는 용서하고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언제든 대형 자연재해나 환경재앙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지혜를 발휘해 그 피해를 줄이는 게 인간의 몫이다.

윤순창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